선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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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척지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청동기시대 대표적 묘제인 고인돌는 크게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로는 수동 화산리 유적의 구획고인돌를 비롯하여 유림 손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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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삼산리 뇌산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삼산리 고인돌은 함양군 함양읍 삼산리 2-21에 있다. 삼산리 고인돌은 뇌산마을 민가에서 동남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의 구릉과 논의 경계지점에 있다. 삼산리 고인돌은 함양군청에서 서남쪽의 함양고등학교를 지나서 천령유치원 전에 오른쪽으로 돌아 뇌산길을 따라가면 오른쪽 들판과 산기슭이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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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까지 이르는 생활 유적. 하원리 유적은 2007년 12월 31일부터 2007년 1월 28일까지 동서문물연구원에서 함양 물레방아테마공원 조성부지를 발굴한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다. 하원리 유적은 함양군에서 물레방아테마공원 조성을 위해 동서문물연구원에서 지표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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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크게 탁자식(卓子式), 기반식(基盤式), 개석식(蓋石式), 위석식(圍石式)으로 나누어진다. 고인돌의 특징은 돌로 무덤방을 만들고 상부에 큰 돌을 놓아 무덤을 표시한 것이다.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일대에는 현재 2곳의 고인돌 유적이 확인되며, 이 중 1곳이 화산리 고인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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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있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복합유적. 화산리 유적에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 고인돌·집석·노지, 삼국시대 주거지·수혈·석곽묘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줄곧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871-11번지 일대로, 연화산의 동남쪽 구릉 말단부에 있는 하안단구에 해당된다...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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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고분 유적. 공배리 고분군은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 있는 소무산에서 동남향으로 뻗어 내린 구릉 말단부의 높이 154~163m 사이에 위치하며, 광주-대구고속도로 함양JC 서쪽 방향 산자락에 있다. 공배리 고분군은 통영대전고속도로 건설구간에 대해 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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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에 있는 유적. 한국도로공사에서 추진하는 88고속도로 담양~성산 간 확장을 위해 2004년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 후, 2009년 삼강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조사한 결과 총 3개 구간에서 유구가 발견되었다. 그 후 2010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도천리 고분군에서 삼국 시대 석곽묘10기, 옹관묘 1기, 조선 시대 분묘 1기가 조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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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보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로 추정되는 고분 유적. 보산리 고분군은 함양군 지곡면 보산리 산37-28번지에 있다. 보산리 고분군은 통영대전고속도로의 함양휴게소 남쪽 끝부분 산기슭에 있다. 통영대전고속도로 건설 중에 1996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보산리 고분군을 확인하였다. 이에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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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 금호마을 뒷산자락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마을 앞쪽 상백들 사이로 남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천변에는 비교적 넓은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구릉에 입지한 것은 상백리 고분군1로, 상백들의 것은 상백리 고분군2로 명명되었다. 상백리 고분군1은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 산8-1번지 일원의 구릉에 있다. 인근에는 상백리 고분군2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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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 상백마을 앞 상백들에 분포한 가야시대 고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 상백마을 앞의 국도3호선과 남강천 사이에 있는 상백에 있다. 인근에는 상백리 고분군1과 상백리 유물산포지가 있다. 상백리 고분군2는 수동면 소재지에서 국도3호선을 따라 북상하다가, 남효삼거리를 지나 오른쪽의 수안길을 따라가면 상백노인정에 도착하기 전의 왼쪽 들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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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손곡리 지곡유적은 2005년과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함양 임천지구 수해상습지를 조사한 결과 신석기시대 유물포함층, 청동기시대 석관묘, 삼국시대 고분군 등이 확인된 복합유적이다. 손곡리 지곡유적은 임천에 곡류하는 강변에 자연제방과 둔치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제방은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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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분. 2005년에 우리문화재연구원의 지표조사와 3번국도 4차로 확장공사 때 출토된 삼국시대 석곽 및 도질토기편를 통해 이 일대에 고분군이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후 경남발전연구원역사문화센터에서 2006~2008년까지 2회에 걸쳐 발굴 조사한 결과, 청동기 때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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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옥매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유적. 옥매리 옥동 고분군은 함양군 유림면 옥매리 옥동마을 뒤편의 독립 구릉에 있다. 수동면 소재지에서 사근교를 건너 왼쪽으로 돌아 대웅교를 지나 서남쪽 옥동마을회관 인근에 있다. 옥매리 옥동 고분군은 옥매리 옥동마을 뒤편 190m 높이 정도 완만한 구릉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 2006년 경남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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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및 생활유적. 함양군 농업기술센터의 건립을 위해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문화재지표조사를 실시하여 유적을 확인하였고, 이에 2014년 8월 20일~2014년 10월 13일까지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구제 발굴조사를 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고분군과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다. 이은리 유적은 함양군 함양읍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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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882번지 일대에 있다. 안의면 소재지에서 거함대로를 타고 경상남도 거창군 방향으로 가다가 용추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용추계곡로를 따라가 함양예술마을에 도착하면 하원리 내동고분에 이르게 된다. 하원리 내동고분에 대해서 주민들은 석곽에서 여러 종류의 회청색 토기를 들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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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척지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유적. 함양 백천리 고분군은 주변에 150~200m 정도 높이의 낮은 구릉에 형성되어 있어서 고분이나 생활유적이 입지하기 적당한 조건이다. 함양 백천리 고분군 일대에는 많은 유적이 분포되어 있는데,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백천리 유적과 공배리 고분군도 인근에 있다. 수동면 소재지에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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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분묘 유적. 황곡리 유적은 2006년 5월 22일~2006년 10월 11일, 2008년 6월 9일~2008년 10월27일까지 2차에 걸쳐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함양 안의농공단지 및 안의제2농공단지 조성과 관련하여 구제 발굴조사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조선 시대 분묘군이 확인되었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관방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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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있는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권 31 함양군 형승조에서는 “산속에 옛 성이 있는데 하나는 추성(楸城)이고, 다른 하나는 박회성(朴回城)이라 일컫는다. 의탄소(義呑所)와 5·6리 거리인데 우마가 능히 가지 못하는 곳이나, 창고 터가 완연히 남아 있다. 세간에는 신라가 백제를 방어하던 곳”이라 전한다.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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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육십령에 있는 삼국시대 고성. 삼국시대 조성된 육십령 고성(古城)은 신라가 백제와 경계를 이루며 북쪽의 조령에서 남쪽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까지 남북으로 뻗은 산맥의 주 능선에 축조한 것이다. 봉우리의 망루와 같은 부속시설 주변의 석축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석축이나 토축의 시설 없이 자연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십령을 기점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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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 함양 마안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마안산 북쪽은 경상남도 거창군과 함양군 사이의 육상교통로가 위치할 뿐 아니라 남쪽은 남강이 흐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교통로 통제를 위해서 축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함양 마안산성은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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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있는 고대 산성. 함양 방지산성은 2004년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를 하였으며 그 결과 성벽과 집수지, 봉수대가 확인되었다. 방지산의 정선부와 8~9부 능선과 남쪽의 곡부를 두르는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주민들은 합미성이나 금당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성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화림지(花林誌)』에서만 확인되는데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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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거창군으로 향하는 국도3호선 동편에 있으며, 전라북도 남원시으로 통하는 함양읍 방면과 전라북도 장수군으로 이어지는 안의면 방향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탁월한 조망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백제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신라에 의해서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행정구역상 함양군 수동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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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팔령마을 뒷산의 9부 능선상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권 31 함양군 산천조에 “팔량치는 군의 서쪽 30리에 있으며, 전라도 운봉현과 경계로 요해처이다. 고개 위에는 신라시대에 쌓은 옛 성이 있다.[八良峴在郡西三十里全羅道雲峰縣界要害處也峴上有新羅古壘)”라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략적 요충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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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고려시대 복합식 산성. 산성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는데, 1410년(태종 10) 『태종실록』 2월 29일 기사에 ‘경상도, 전라도 여러 고을의 산성을 수축하였다. 창녕현의 화왕산, 감음현(感陰縣)의 황석산(黃石山)……’라고 나와 있으며,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서』에는 ‘이 산성은 고려 때부터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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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천리에 있는 고려시대 읍성.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1 함양군 성곽조에 “고읍은 군의 동쪽 2리에 있으며 홍무 경신년[1380]에 왜구의 침입으로 관아가 소실되었다. 관아를 문필봉 아래로 옮기고 흙을 쌓아 성을 만들었다[古邑在郡東二里洪武庚申廨舍爲倭寇所焚遂移治于文筆下築土爲城]”이라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함양고읍성은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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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읍성. 『세종실록지리지』권 150 함양군 읍토성조에 “둘레가 4백 33보인데, 안에 작은 못 3, 우물 3이 있다[內有小池三井三周回四百三十三步內有小池三井三]”라고 기록되어 있어, 『세종실록지리지』 제작 당시인 1454년에는 아직 함양읍성이 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1 함양군...
탑·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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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군. 원래는 군자사에서 수행했던 고승의 유골이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하여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260번지 벽송사 3층석탑 옆에 이건되어 있다. 3기의 부도 중 왼쪽의 것은 전체 높이가 80㎝이고, 상륜부는 유실되었다. 중앙에 있는 것은 탑호가 ‘율봉당(栗峯堂)’으로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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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영각사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종모양 부도군. 영각사는 877년(헌강왕 3) 때 심광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시대 때 폐사된 절을 1449년(세종 31)에 원경 스님이 중창한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이후 1834년(순조 34)에 화재로 화엄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전소되었으며, 1886년(고종 23) 강용월대사가 중수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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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 경내에 있는 부도. 승려 청매(靑梅) 인오(印悟)[1543~1623]의 생몰시기를 고려할 때 영원사 방광사리탑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의 영원사 동쪽 구릉 경내에 있다. 영원사 방광사리탑이 확인되는 영원사(靈源寺)는 신라 진덕여왕 때 영원(靈源)이 창건하였다. 영원사에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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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용추사 일대의 부도군.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탑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통일신라 선종 때이다. 부도는 탑신 모양에 따라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과 석종형(石鐘形)으로 구분된다. 팔각원당형은 통일신라 시대에 주로 확인되며, 석종형은 고려 시대 이후 많이 확인되고 있다. 용추사 부도군의 정확한 조성시기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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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용추계곡에 있는 옛 장수사 터에 있는 부도군. 장수사 부도군의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장수사의 건립 시기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장수사(長水寺)는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의 기록을 볼 때 485년(신라 소지왕 9)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하였다. 신라시대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을 비롯해 조선 시대의 무학(舞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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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금대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탑. 금대사(金臺寺)는 656년(태종무열 3) 행우(行宇)가 창건하였으며, 도선(道詵)[827~898]이 중창한 뒤 나한도량으로 이름이 났다. 1430년(세종 12)에 천태종 판사도대선사(判事都大禪師) 행호(行乎)가 인근 안국사(安國寺)와 함께 중창하여 금대사라고 하였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왜구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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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의 등구사 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등구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 수 없으며 고려 말에 소실된 것을 조선 초에 중건하고 1708년(숙종 34)에 증축하였다고 전한다. 등구라는 지명은 주위의 산 형태가 거북이 산으로 올라가는 형국에서 유래되었다.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촉동마을 뒤편의 세석대골 옛 등구사 터에 있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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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암 앞마당에 있는 조선 시대 승탑군.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내장사(內藏寺)의 창건 기록에 의하면 영은사(靈隱寺)는 신라 시대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승탑군에 확인된 명문을 참고할 때 1743년(영조 19)에 처음 승탑이 조성된 이래로 18세기 말까지 집중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옛 영은사 터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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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 경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탑.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은 벽송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벽송사는 1520년(중종 15)에 벽송지엄(碧松智儼)이 중창한 사찰이다. 석탑의 양식은 벽송사가 창건되기 이전의 신라 말이나 고려 초의 양식을 보이지만 그 정확한 연대의 추정은 어렵다.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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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옛 승안사 터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승안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승안사는 사암산(蛇巖山)에 있다”고 하였을 뿐 다른 기록은 없으며, 일찍이 폐사된 듯하다. 지금 승안사 터는 하동정씨의 묘지공원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 일대에 그들의 묘가 확인된다. 1962년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 사리 구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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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안국사 뒤 구릉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승탑. 함양 안국사은광대화상 승탑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비는 사찰인 전국의 3안국[지리안국, 서산안국, 금산안국] 중 지리산의 안국사에 있는 것으로 명당의 혈에 해당하는 곳에 있다. 남북국시대의 승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에 새겨 놓은 연꽃 문양으로 보아 나말여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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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안국사에 있는 고려시대 승탑군. 안국사는 1403년(태종 3)에 행호조사가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1947년 소실되었다가 1965년 중건되었다. 안국사에서 안국암으로 명칭이 바뀐 정확한 이유는 알려진 바 없다. 승탑은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구를 놓고 쌓은 둥근 돌탑을 지칭하는 것으로 승탑에 새겨진 탑호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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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의 영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탑군. 승탑은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놓고 쌓은 돌탑을 지칭하는 것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 승탑은 설파상언(雪坡尙彦)[1707~1791] 대사의 것으로 가장 먼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승탑은 당호가 새겨져 있지만 주인공들의 생몰연대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산...
묘·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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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에 조성된 한남군의 묘소. 묘소의 주인인 한남군 이어(李𤥽)[1429~1459]는 세종의 세 번째 후궁인 혜빈양씨(惠嬪楊氏)의 장자이다. 자는 군옥(羣玉)이고, 시호는 ‘정도’이다. 1411년(세종 23)에 세종이 온수현(溫水縣)의 가마곡(加磨谷)에 행차할 때 궁궐 수비를 관장했던 공으로 한남군에 봉해졌다. 세조 즉위 후인 1456년(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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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에 있는 함양여씨 입향조의 묘소.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 임호마을의 입구에 있다. 재실 뒤로는 시조 여어매(呂御梅)의 무덤이 있고, 그 아래에 아들인 여임청(呂林淸)의 무덤이 있다. 이곳은 휴천면 소재지에서 휴천우체국을 지나 삼거리에서 임호길을 따라 가면 곧 도착한다. 여임청은 함양여씨(咸陽呂氏) 시조인 여어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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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논개의 묘로 전해지는 곳. 전라북도 장수군과 경계를 이루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의 ‘탑시기골’에 있다. 서상면 소재지에서 논개길을 따라 서남향하다가 산기슭을 돌아 북상하면 방지마을 논개 묘역에 도착할 수 있다. 논개 묘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진주성 전투에서 생존한 의병들이 남강 지수목에서 논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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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정여창의 묘역.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묘소는 1504년에 사망한 직후 일어난 갑자사화로 부관참시를 겪었던 곳이다. 함양 정여창 묘역 내에는 정여창의 묘와 정경부인 완산이씨의 묘, 동계 정온의 신도비, 각종 석물 등이 있어서 조선 전기 사대부의 무덤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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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열녀 남양방씨의 정려비. 남양방씨는 효행으로 통정대부와 공조참의에 추증된 모우당 우문화(禹文華)의 며느리이다. 시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조모(祖母)를 극진히 모셨다. 정유재란 때 왜적에게 조모와 잡혀 해를 당할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꾸짖고 순절하였다. 후일 조정에서 이 일을 알고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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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풍천노씨 삼인의 정려. 함양군 지곡면 오평마을과 덕암마을의 중간지점인 함양로 변에 있다. 노진(盧禛)은 효성이 지극하여 1585년(선조 18)에 정려가 내려지고 1723년(경종 3)에 정려비가 세워졌다. 노진의 정려는 처음에는 지곡면 창촌 동편에 있었으며 이후에 개평리 오평으로 이건하였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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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에 있는 마정립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마정립(馬挻立)의 자는 달지(達之)이고, 호는 한남(漢南)이며, 본관은 장흥이다. 마정립은 조선 태종 때 좌명공신이었던 마천목(馬天牧)의 7대손이다. 마정립이 함경도 삼수진(三水鎭)의 병마첨절제사로 있을 때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났다. 고을을 지키던 수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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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에 있는 박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에 있는 창곡마을 뒤편에 있다. 박손(朴巽)의 자는 경실(景實)이고, 춘당(春塘) 박맹지(朴孟智)의 4대손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으고 군수물자를 조달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이 박손에게 항복하라고 협박하자, 그는 “의를 지켜 죽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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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박은호에게 내려진 정려. 박은호의 본관은 밀성이다. 정유재란 때 부친과 황석산성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성이 함락되자 부친을 업고 탈출하다가 순절하였다. 조정에서 이 일을 알고 그의 충효정신을 기리려고 정려를 내렸다. 함양군 안의면 귀곡리 귀곡마을 입구 근처의 밭에 있다. 함양군 안의면 면소재지인 금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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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에 있는 박태민·박태현 부자의 효행을 기려 세워진 정려비.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 동촌마을 입구에 있으며, 함양군 안의면 소재지인 금천리에서 용추계곡으로 가는 길의 도로변에 있다. 박태민·박태현 부자는 그 부모에게 각기 정성으로 효성을 다하여 두 부자가 같은 날인 1871년 2월 27일(고종 8)에 나라로부터 정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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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옥계리에 있는 개항기에 삼척박씨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함양군 병곡면 옥계리 소현마을 서쪽 지방도1001호선 인근, 위천의 언덕 위에 있다. 삼척박씨 4인[박자천(朴自芊), 박봉(朴芃), 박창모(朴昌謀), 박영수(朴永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891년(고종 28)에 통사랑친군남영문안(通仕朗親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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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에 있는 서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 때 세워진 정려. 서준(徐儁)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뛰어났다. 7세 때 어머니가 병 중에 꿩고기가 드시고 싶다 하여 산에 올라 구했으나 구하지 못하였고, 통곡을 하자 꿩이 뜰에 떨어졌다. 그 꿩을 어머니께 요리해 드리자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13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侍墓)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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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의 송문에게 내려진 정려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이문마을 앞 들판에 있다. 서쪽으로 안의천이 북으로 흐르고 있다. 송문(宋文)은 어릴 때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상례를 지극히 모셨다. 어머니의 병환에 변을 맛보며 구완하였고, 돌아가시자 3년상을 무사히 치렀다. 이런 효행으로 안의훈도(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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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에 있는 신영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의 임천 남쪽의 송전리마을 입구에 있다. 신영언은 제정공(齊靖公) 효창(孝昌)의 후손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신영언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매일 호랑이와 함께 무덤을 지켰다고 전한다. 후에 아내가 잘못하여 불을 냈는데, 불길이 병들어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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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 신효선의 정려.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 손곡마을 동쪽 임천과 만나는 구릉말단부에 정려가 있다. 주변으로 3채 정도의 민가가 있으며 동쪽에는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신효선은 호는 덕재이며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다. 부모님의 병환이 위중할 때 변을 맛보면서 부모를 간호하였다. 하늘에 자신이 부모를 대신하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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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인 안동권씨의 정려.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내동마을 도로변에 있으며, 내동마을 회관과 인접하여 있다. 정태일의 처 권씨부인은 1756년(영조 32)에 태어났고 이웃 고을에서 혼인하였다. 1795년(정조 19) 남편이 호랑이에게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하였을 때 권씨부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호랑이와 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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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우석일·우광남의 효자 정려. 난곡(蘭谷) 우석일(禹錫一)[1612~1666]은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의 문인이며, 학문뿐만 아니라 효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우석일의 재종조(再從祖)인 우광남 역시 모친이 병이 들자 극진히 간호하였으며 부친이 도적을 만나 해를 당하려고 할 때 눈물로써 도적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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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에 있는 개항기에 이민복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에 있는 관동마을 도로변에 있다. 이민복(李敏馥)은 단종 때 충신인 고은(孤隱) 이지활(智活)의 13대손이며 나졸옹(懶拙翁) 사엽(師燁)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을 앓으면서 꿩 고기를 먹고 싶어 하여 그가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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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주이씨 삼의사의 정려비. 이숙·이진·이한필 정려비는 1728년(영조 4)에 발생한 이인좌의 난 때 의병으로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이숙(李橚), 이진(李榗), 이한필(李漢弼)의 충절을 기려 나라에서 세운 것이다. 이지활의 9세손인 이숙과 이진은 형제이고, 이한필은 이숙의 아들이다. 이인좌의 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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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워진 효자 이재환을 기리는 정려비.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상비마을 입구에 정려각이 있으며, 정려각의 앞면과 뒷면에 길이 나 있다. 인접한 거리에 큰 노거수가 있으며, 그 아래에 정려각이 있다. 이재환 효자 정려비는 원주(原州)가 본관인 이재환의 효행을 기려 1826년(순조 27)에 내려진 정려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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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 건립된 임운의 효행 정려. 임운 효자 정려는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 하백마을 앞에 있으며 난평삼거리의 동쪽인 한들로 변에 해당한다. 한들로 현대종합기계 북서쪽 공터에 정려가 있다. 임운(林運)[1709~1775]은 본관이 나주이고, 만회(晩悔) 상재(尙榟)의 후손이다. 임운은 어머니가 병이 생기자 변을 맛보고 병의 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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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동호정마을에 있는 장만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장만리(章萬里)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내려진 정려이다. 정식 명칭은 ‘유명조선국 충신 통훈대부 행정릉영 증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 장만리지려(有名朝鮮國忠臣通訓大夫行定陵令贈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章萬里之閭)’이다. 함양군 서하면 육십령로 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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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봉전마을에 있는 개항기에 전세량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비.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봉전마을의 거연정과 군자정 사이에 있다. 전세량의 호는 일송(一松)이고, 본관은 정선이다. 매학재(梅鶴齋) 윤석(胤錫)의 손자다. 전세량은 일찍이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단을 세우고 하늘에 빌었더니 그의 효행에 호랑이가 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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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에 있는 개항기에 전형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 송계마을의 주택가에 있다. 전형수(全衡壽)[1833~1884]의 자는 이중(而仲)이고, 호는 가포(稼圃)이며, 본관은 정선이다. 전형수는 이조참판 근(謹)의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잠효록(簪孝錄)』에 전형수의 행실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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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에 있는 개항기에 정순필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월명마을 연화사(蓮花寺) 입구의 도로변에 ‘정태원 시혜불망비(鄭台元施惠不忘碑)’와 나란히 서 있다. 정순필(鄭淳必)[1819~1872]은 자는 윤찬(允贊)이고, 본관은 하동으로 정경업(鄭慶業)의 후손이다. 6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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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에 건립된 정현의의 정려.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 산146-1번지에 있다. 북쪽에는 산두마을이, 남쪽에는 긴 구릉이 펼쳐지는데 정려각은 구릉말단부와 함양남서로가 접하는 곳에 있다. 이곳은 휴천면 소재지에서 함양남서로를 따라 1.2㎞쯤 가면 된다. 정현의(鄭鉉毅)는 해주사람으로 20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3년상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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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조귀천의 정려.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 독산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개천인 지우천과 인접하여 있다. 비의 형태는 화강암의 받침 위에 비석을 놓았으며, 비석의 양쪽에 장방형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가첨석을 올려놓았다. 비에는 ‘효자백정조귀천지려 부득악질단무명지화 이진기질즉유사문복호 명려 함풍5년 을묘 사월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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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에 건립된 진양강씨와 권무중의 정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 488번지에 있다. 신관리 기동마을 동쪽 앞산 너머 들판 초입에 있다. 증 참판 권수룡의 처인 열녀 진양강씨는 남편이 사망하자 유서를 남겨 뒷일을 처리하도록 부탁하고 자신은 남편의 뒤를 따랐다. 경상도관찰사가 이런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여 1832년에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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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하씨 삼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정려.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의 도천마을에 있다. 진양하씨 삼인정려는 우계(愚溪) 하맹보(河孟寶), 하원룡(河元龍), 하필명(河必明)의 정려이다. 하맹보는 어려서부터 옥계 노진의 문하에서 학문에 힘썼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우애가 두터웠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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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조선시대 하동정씨 아홉 충신의 정려각. 구충각은 하동정씨 일가 여덟 문중에서 아홉 사람을 지칭한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안음[지금의 안의면]에서 정희량 등이 난을 일으켰는데 이를 진압한 이들이 하동정씨 아홉 사람이다. 이에 나라에서 공을 인정하여 정려를 내렸다. 9인은 정희운, 정찬헌, 정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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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임술증의 처 밀양박씨의 정려.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번지 상림공원 역사인물공원에 있다. 1797년(정조 21)에 세워졌다. 비문은 일두 정여창의 7대손인 정덕제(鄭德濟)가 지었다. 정려비는 원래 함양향교 입구에 있었으나 1932년에 도로 확장공사로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 111-69로 옮겨졌다. 이후 20...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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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건립된 공기헌의 불망비. 공기헌(孔沂憲)은 참봉으로 지금의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대방마을에서 200석 정도의 농사를 지었다. 그는 인심이 좋아 거지에게도 후하게 대접을 하였다. 흉년이면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 칭송이 자자하였다. 1782년에 걸인들이 돈을 모아 비를 세워 그의 선한 행실을 후세에 남기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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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허비. 구천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창건하여 박맹지(朴孟智), 양관(梁灌), 강한(姜漢), 표연말(表沿洙), 양희(梁喜), 하맹보(河孟寶) 등의 6명을 배향하였다.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8년에 철폐되었다. 1919년에 후손들이 그 유허지에 ‘구천서원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1984년에 후손들이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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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광보의 선덕비. 김광보(金光輔) 선덕비의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비석의 명문에 병인년(丙寅年)이라는 간지(干支)가 나오지만 시기가 조선 후기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 함양군 함양읍 이은리에 있는 기효각(記孝閣) 바로 앞에 있다. 자연암을 손질하여 만든 대석(臺石)에 홈을 파고 명문을 세긴 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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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선정비. 군수 김이위(金履褘)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문에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보이지 않고 ‘병술년(丙戌年)’에 세워졌다는 간기만 있어 조선 후기의 인물로 추정된다.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마을 입구에 박재문 영세불망비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함양군청에서 지방도1023호선을 타고 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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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청계서원 내에 있는 탁영 김일손의 유허비.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자는 계운(季雲)이고 호는 탁영(濯纓)·소미산인(小微山人)이며 시호는 문민공이다. 본관은 김해이다. 김일손은 조선 전기에 정여창과 함께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에 합격한 이래 이조좌랑과 이조정랑 등 주요 요직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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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옥계리에 건립된 김해김씨 삼인의 시혜 불망비. 김해김씨 시혜불망비는 비석 3기와 석각 1기로 되어 있다. 석각은 전면장 김창수의 선정비이다. 3기의 비석 중 2기는 김화두의 덕을 기리는 비석이며, 나머지 1기는 김기두의 비석이다. 전면장 김창수는 1862년(철종 13)에 태어났으며, 20세의 나이로 충청도관찰청의 도사를 지냈다. 5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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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의 당주서원 터에 있는 일제 강점기 유허비. 1868년에 내려진 서원철폐령으로 문효공(文孝公) 노진(盧禛)을 기리던 당주서원(溏洲書院)이 훼철되었다. 당주서원 훼철로 노진의 13대손인 노병권(盧秉權)이 근 80년 만에 위당 정인보(鄭寅普)에게 비문을 새롭게 찬술할 것을 청하여 당주서원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당주서원 유허비는 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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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마을에 세워진 선정비. 부사 박재문(朴載文)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773년(영조 49)에 세워졌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마을 입구에 김이위 불망비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함양군청에서 지방도1023번을 타고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 쪽으로 나아가면 창촌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박재문 영세불망비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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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에 있는 석교비. 1759년(영조 35)에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 음지마을에서 양지마을로 건너가는 돌다리를 놓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1759년 건립 당시 화주(化主)는 박만귀(朴萬貴)이고 감별좌(監別坐)는 이만춘(李萬春)과 서봉상(徐奉尙)이었다. 이후 다리가 훼손되자, 1962년에 함양박씨와 합천이씨의 후손인 박판섭(朴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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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에 여의순을 기리며 건립한 비. 1919년에 여의순(余意淳)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석이다. 여의순은 사간(司諫)을 지낸 여선재(余善才)의 후손으로, 1894년(고종 31)에 진사가 되었으며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여의순 시혜비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여의순 시혜비는 함양군 함양읍 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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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군수 이헌주의 선정비. 함양 군수를 역임한 이헌주(李憲周)의 선정을 치하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헌주는 전임 군수인 김려가 1822년에 순직한 후에 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1823년(순조 23) 3월에 이 선정비를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에 위치한 상림공원 내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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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 내산치라골 마을 뒷구릉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임여방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나주임씨 종친회에서 임여방(林汝芳)[1661-1752]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유허비의 건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종친회에서는 6·25전쟁 이전[1948년 경]일 것으로 추정한다. 1728년(영조 4)에 정희량이 반란을 일으키자,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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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일두 정여창의 신도비. 정여창(鄭汝昌)[1450~1504]은 본관은 하동, 자는 백욱(伯勖), 호는 일두(一蠹),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정여창은 안음현감으로 5년간 재임하면서 백성들에게 인정을 베풀고 문교(文敎)를 일으키는 등 덕행을 행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해 1689년에 신도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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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안의현감들의 선정비. 선정비는 조선시대 안의현 현감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안의현성 부근에 산재하고 있던 비석 19기를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29-2에 있다. 비석군 맞은편에는 남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인 함양 안의 광풍루가 있다. 안의교에서 안의대교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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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있는 옥계 노진의 신도비. 노진(盧禛)[1518~1578]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자응(子膺)이고 호는 옥계(玉溪)·칙암(則庵)이며 본관은 풍천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증조부는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이고 할아버지는 노분(盧昐)이다. 아버지는 참봉 노우명(盧友明)이고 어머니는 권시민(權時敏)의 딸이다.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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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상림공원에 있는 선정비군. 선정비군은 함양군 각지에 흩어져 있던 것을 편리한 관리와 효과적인 전시를 위하여 상림공원 내에 모았다. 선정비는 함양군 일대에서 군수, 부사, 관찰사 등의 관직을 역임한 이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총 32기이다.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에 있는 상림공원 내에 있다. 상림공원은 함양군의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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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도촌리 대고대마을에 있는 양희의 신도비. 양희(梁喜)[1515~1581]는 문신으로, 자는 구이(懼而)이고 호는 구졸암(九拙菴)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1580년(선조 13)에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옥하(玉河)의 객관에서 병사하였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양의 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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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여창의 사당비. 정여창(鄭汝昌)을 기리기 위해 1583년에 당시 안의현감 이후(李侯)와 유림들이 건립하였다. 본래 용문서원 안에 세웠으나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 사당비의 비문은 갈천(葛川) 임훈(林薰)이 짓고, 글씨는 석곡(石谷) 성팽년(成彭年)이 썼다. 함양 정여창 사당비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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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국주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세운 비. 개항기에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겪은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를 경계하고자 전국 주요 도로변에 척화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임오군란과 일제강점 이후 대부분의 척화비는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다. 함양 상림 근처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함양 척화비는 원형을 갖추고 있다. 경상남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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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최치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최치원(崔致遠)[857~?]은 경주최씨의 시조로 문장에 뛰어났고, 진성여왕에게 시무책(時務策) 10여 조(條)를 올려 국정을 바로 잡고자 하였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었고 문묘(文廟)에 배향되며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다. 9세기 말 신라 진성여왕[재위 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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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있는 신고당 노우명의 신도비와 그 부부의 묘표. 옥계(玉溪) 노진(盧禛) 신도비의 위쪽에 있다. 신도비는 남향으로 안장된 노우명(盧友明)[1471~1523] 부부 쌍분의 축대 아래의 동쪽에서 서향으로 서 있다. 묘표는 각각의 분묘 정면에 남향으로 서 있다. 신도비는 노우명의 아들 노진이 이조판서를 지내게 되자 증직되어 15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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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 건립된, 하경순을 기리기 위한 비석. 상무사는 1899년(광무 3)에 상업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다. 등짐장수인 부상단을 좌사 혹은 좌단, 봇짐장수인 보상단을 우사 혹은 우단으로 불렀다. 여기서 접장은 좌사와 우사로 구성된 상무사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함양군 안의면 상무사의 우두머리인 하경순은 1890년대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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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모아 놓은 조선 후기 관리들의 선정비군. 조선시대 수동면 일대에서 찰방, 군수, 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찰방에 대한 선정비가 4기, 군수 및 관찰사는 각 1기, 기타 1기이다. 특히 찰방에 대한 것이 많은데, 이는 화산리 일대에 조선 시대 사근도를 관할하는 사근역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근도의 본역은 사근...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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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창건되었다가 소실된 절터. 경상남도 함양군은 북쪽으로 남덕유산, 남쪽으로 지리산이라는 명산이 있어 수행자들이 즐겨 찾았고, 일찍부터 산골짜기 곳곳에 수행처가 마련되었다. 1254년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서는 “지리산 중에 70여 곳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선의 숭유억불정책과 한국전쟁을 포함한 수차례의 전쟁으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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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1684년의 사적기에서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이 군자사에 머물며 태자를 낳았고, 이후 환도하면서 머물던 곳을 사찰로 만들어 ‘군자사’라는 사명(寺名)을 지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 불일(佛日)국사가 이곳을 중창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진각(眞覺)국사가 이곳에 중창하였다. 이후 다시 흥폐하다가 1317년(충숙왕 4)에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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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덕봉사의 창건과 폐사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다. 남아 있는 기와편 및 부도 등의 유물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범우고(梵宇攷)』의 기록, 『해동지도(海東地圖)』·『여지도(輿地圖)』·『광여도(廣輿圖)』 등으로 볼 때, 고려 전기에서 조선 후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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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촉동마을 뒤편 세석대골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등구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말에 소실된 것을 조선 초에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31 경상도 불우조에서는 “오도봉(悟道峰)에 있다”고 전한다. 김일손도 『속두류록(續頭流錄)』에서는 “신마(信馬)로 등구사에 당도하니, 산의 형상이 소복하여 거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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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에 있는 절터. 백화사 터는 함양군 서주리에 있으나 사찰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1900년대에 편찬된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 “옛 터가 유림면 유평리 화장산 동남쪽 기슭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20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 회동의 임동골 말단부에 있다. 유림면 소재지에서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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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의 괘관산에 있는 절터. 안정사 터의 창건이나 폐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다만 『여지도서(輿地圖書)』·『범우고(梵宇攷)』에 ‘천왕점(天王岾)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영남읍지(嶺南邑誌)』에는 ‘안정암(安靜庵)’으로 표기되어 있다. 1942년에 발간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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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엄천사 터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31 경상도(慶尙道) 불우조(佛宇條)에 ‘엄천사 터는 엄천북안에 있다’라고 나와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범우고(梵宇攷)』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변화양상을 알 수는 없다. 다만 『함양군지』에서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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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신라시대 영은조사가 창건한 영은사 터. 화과원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백용성이 독립운동과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27년 백전면 백운리 산 50번지 일대에 조성한 농장이다. 화과원 경내에 있는 영은사는 신라시대 서기 636년에 영은조사가 개창했다고 전해지는 고찰로, 영은사 터 위쪽 백운암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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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농장 터. 백용성[1864~1940]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이며, 불교에서는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실천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산림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과수를 심고 화과원(華果院)이라는 농장을 설립하였다. 화과원은 일제 강점기 독립자...
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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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금반리 가마터는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사구마을 건너편에 해당하는 월평저수지 옆 산사면부에 입지해 있으며, 사천 백천리 가마와 유사하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 288의 월평저수지 옆 산사면부에 있다. 금반리 가마터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연소실은 파괴되었으며 단애면에 소성실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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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가마 주변의 둔덕에서 다량의 자기편과 소량의 도질토기 편이 채집되었을 뿐 정확한 변천 과정은 알 수 없다.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 422번지 일원의 회동마을 배나무골에 있다. 서주리 가마터는 회동마을 배나무골에 있으며 유평, 회동 소류지가 인접한다. 가마터의 남동쪽에 있는 소하천이 남동류하여 임천...
기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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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에 있는 낙포 김사형의 영정각. 안의천 상류 좌안에 있는 마을회관 바로 뒤에 있다. 망덕산의 서사면 말단부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에는 작은 곡저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낙포(洛圃) 김사형(金士衡)[1341~1407]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으로 고조부는 김방경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대간과 개성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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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남효리에 있는 고려시대 고분 유적. 남효리 유적은 동쪽에 있는 남계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형성된 ‘남효들’ 가운데 있다. 북쪽에는 남효리 유물산포지가 있고, 남서쪽으로 함양 마안산성이 있다. 지곡면사무소 소재지에서 국도3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남효삼거리에서 왼쪽의 남강천을 건너면 들판에 있다. 『문화유적총람』 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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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만취 방한상의 생가 터. 방한상(方漢相)[1899~1970]은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을 중퇴하였다. 귀국 후에 대구청년회(大邱靑年會) 간부로 활동하고, 1925년에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인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였다. 항일운동가 방한상은 대구의 도청을 포함한 관공서를 파괴하는 한편, 지사(知事) 등의 수뇌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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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적. 신관리 유적은 함양군의 동북쪽인 함양읍 백천리~용평리 일원에 있으며 약 2.9㎞ 길이에 이르는 길고 폭이 좁은 도로 개설 구간이다. 위천 북안으로부터 약 1.2㎞ 거리에 있는 신관리 관변마을 서쪽 충적저지(沖積低地)인 논경작지와 북동쪽으로 이에 연한 구릉 정부~사면말단부 그리고 백천리 중간마을 서쪽의 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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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천리에 있는 통일 신라시대 말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 이르는 건물지 유적. 2011년 6월 14일부터 2011년 8월 31일까지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함양 본백-용평 간 4차로 확장공사와 관련하여 구제 발굴조사 한 유적으로 조사한 결과,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이르는 신천리 유적이 발견되었다. 함양 본백-용평 간 4차로 확장공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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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교토제국대학의 부속 연습림 관리 사무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 74번지에 있는 목조 건물이다. 함양 구 임업시험장 하동·함양지장은 1917년 일본 교토제국대학 부속연습림을 관리하는 사무실로 건립되었다. 1945년에는 조선임업시험장 남선지장[함양]이 설치되었으며, 1949년에 중앙임업시험장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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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의현감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새겨 놓은 석각군. 조선시대 역대 안음현 혹은 안의현[지금의 함양군 안의면 지역] 현감들의 선정을 새긴 바위이다.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819번지에 있다. 육십령로를 따라 봉전마을 앞 함양 거연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3호]을 지나 약 200m를 오르면 오른쪽 도로변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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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용추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일주문. 용추사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용추사 일주문은 여타 일주문과 다르게 화려하고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용추계곡의 상류 용추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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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지족당 박명부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에 건립한 서당. 박명부(朴明榑)[1571~1639]는 문신이지만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도 활약하였다. 예조참판으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발발했는데, 청나라와의 강화를 반대하였다. 청과의 강화로 낙향하여 농월정을 건립하였지만 다시 관직에 나가 예조참판, 한성좌윤,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지족당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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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 경내에 있는 한 쌍의 목장승.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 목장승은 귀신을 몰아내고 경내의 금지된 규제와 풍수비보(風水裨補)를 지켜 주는 수문(守門)과 호법(護法)의 신장상(神將像)이다. 당초에는 사찰 입구 길가의 양쪽 좌, 우측에서 마주 보고 서 있었으나 문화재적 보존 가치가 높아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벽송사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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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백운암 입구에 있는 석장승. 함양 영은사지 석장승은 신라 시대의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한 영은사(靈隱寺) 경내에 있었던 사찰 장승이다. 현재는 백운암 입구의 길가 양쪽에 1기씩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장승에는 각각 ‘우호대장군(右護大將軍)’, ‘좌호대장군(左護大將軍)’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마모가 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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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에 있는 함양읍민의 집회 활동을 위해 건립된 건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중앙길에서 용평4길로 들어서서 남쪽으로 약 100m를 가면 왼쪽에 있는 함양군 주차장이 함양읍민회관 자리이다. 2018년 기준으로 건물이 철거되어 확인할 수 없고 주차장의 동편에는 지리산함양시장이 있다. 1973년 7월 31일에 함양읍성 남문 밖 서남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