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548
한자 金海金氏施惠不忘碑
이칭/별칭 함양 옥계리 김해김씨 시혜불망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옥계리 131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현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전면장김창수선정불망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 신사김화두선덕불망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932년연표보기 - 신사김공화두선덕불망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62년 - 김창수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69년 - 김기두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81년 - 김화두 출생
현 소재지 김해김씨 시혜불망비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옥계리 1313 지도보기
성격
관련 인물 김창수|김화두|김기두
재질 석재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옥계리에 건립된 김해김씨 삼인의 시혜 불망비.

[건립 경위]

김해김씨 시혜불망비는 비석 3기와 석각 1기로 되어 있다. 석각은 전면장 김창수의 선정비이다. 3기의 비석 중 2기는 김화두의 덕을 기리는 비석이며, 나머지 1기는 김기두의 비석이다.

전면장 김창수는 1862년(철종 13)에 태어났으며, 20세의 나이로 충청도관찰청의 도사를 지냈다. 50세쯤 고향으로 돌아와 화전 생활을 하던 주민들과 황무지 개척, 수종개량 등의 사업을 진행하였다. 춘궁기에도 기아에 허덕이지 않게 되자 그의 사망 후인 1919년 7월에 도로변의 암석에 불망비를 세워 그를 기렸다.

김화두는 1881년 출생으로 김창수의 큰아들이다. 김화두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이웃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거지와 과객에게도 정성을 다하였다. 이에 김화두의 사후 지역민과 거지들이 1927년과 1932년에 각각 불망비를 세웠다.

김기두는 1869년(고종 6)에 태어났는데, 사재를 털어 서당을 열고 흉년이면 창고를 열어 주민들을 구휼하였다. 이러한 업적을 기려 영남과 호남 유림들이 비를 세웠다.

[위치]

김해김씨 시혜불망비함양군 병곡면 옥계리 1313번지에 있다. 병곡면 소재지에서 함양서남로를 타고 서북쪽으로 가다가 토내교 북쪽, 박씨효자각에서 약 100m 앞에 있다.

[형태]

비석은 비신과 비대만 있는 소략한 형태이다. 석각은 바위에 양각으로 비석 모양을 파낸 후 그 안쪽에 음각으로 글씨를 새긴 형태이다.

[금석문]

석각은 ‘전면장김창수선정불망비(前面長金昌守善政不忘碑)’이고, 비명은 ‘신사김화두선덕불망비(紳士金華斗善德不忘碑)’, ‘신사김공화두선덕불망비(紳士金公華斗善德不忘碑)’, ‘신사김기두진휼비(紳士金琪斗賑恤碑)’이다.

[현황]

2018년 기준으로 함양남서로 우측 암벽 밑에 석각 및 비석이 있다.

[의의와 평가]

길가에 있는 비석이나 효자각의 특성상 2018년 기준으로 함양남서로가 과거 함양읍병곡면을 잇는 주요 도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병곡면 지역에서 김해김씨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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