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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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유학자. 강익(姜翼, 1523~1567)은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孝友村)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현감을 지낸 강이경(姜利敬), 조부는 현감을 지낸 강한(姜漢)[1454~?], 부친은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강근우(姜謹友)이다. 모친은 남원양씨(南原梁氏)이다.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 또는 송암(松庵)이다. 강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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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에서 출생한 개암 강익의 문집. 강익(姜翼)[1523~1567]의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송암(松庵), 본관은 진주이다. 당곡(堂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등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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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재기의 문집. 정재기(鄭在箕)[1811~1879]의 자는 오이(五而), 호는 개은(介隱)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헌릉참봉을 지낸 정환보(鄭煥輔)이다.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심능간(沈能簡)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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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의 고택을 통해 살펴본 조선 시대 선비들의 주거 문화와 변천.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2개의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형성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낄 개(介)’자의 형상을 보이는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14세기 경주김씨와 하동정씨가 이주하면서 마을이 처음으로 형성되었고, 이후 15세기에 풍천노씨가 들어와 살면서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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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전통 체험 마을. 개평한옥마을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였던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인 ‘ 함양 일두고택’을 비롯하여 ‘함양 오담고택’,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 ‘함양 노참판댁 고가’ 등 60여 채의 전통 한옥들이 전통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5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지은 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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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청계서원 내에 있는 탁영 김일손의 유허비.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자는 계운(季雲)이고 호는 탁영(濯纓)·소미산인(小微山人)이며 시호는 문민공이다. 본관은 김해이다. 김일손은 조선 전기에 정여창과 함께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에 합격한 이래 이조좌랑과 이조정랑 등 주요 요직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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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남계서원의 사적과 연원 등을 기록한 서원지. 『남계서원지』는 남계서원과 관련한 제반 사항과 향사(鄕祠)[이름난 학자,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집을 세우고 제사지내는 사당]된 인물들의 사실을 간략히 수록하고 있다. 남계서원은 1552년에 건립되었으며, 1566년에 사액(賜額)[왕조 시대 때 임금이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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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서평촌 출신인 남계 임희무의 문집. 임희무(林希茂)[1527~1577]의 자는 언실(彦實), 호는 남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평촌(黍坪村)[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 출신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사사하고,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 등과 교유하였다. 1552년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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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열녀 남양방씨의 정려비. 남양방씨는 효행으로 통정대부와 공조참의에 추증된 모우당 우문화(禹文華)의 며느리이다. 시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조모(祖母)를 극진히 모셨다. 정유재란 때 왜적에게 조모와 잡혀 해를 당할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꾸짖고 순절하였다. 후일 조정에서 이 일을 알고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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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열녀 남양방씨의 정려비. 남양방씨는 효행으로 통정대부와 공조참의에 추증된 모우당 우문화(禹文華)의 며느리이다. 시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조모(祖母)를 극진히 모셨다. 정유재란 때 왜적에게 조모와 잡혀 해를 당할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꾸짖고 순절하였다. 후일 조정에서 이 일을 알고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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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터를 잡은 풍천노씨 입향조이자 문신. 노숙동(盧叔仝)[1430~1463]의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30년 3월 임인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확목리 화목마을에서 3남 3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승사랑(承仕郞) 용구현령(龍駒縣令) 노천계(盧天桂)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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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문인. 노우명(盧友明)[1471~1523]의 자는 군량(君亮), 호는 신고당(信古堂)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노분(盧昐)[1437~1478]이다.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로, 동지중추부사 신광경(愼光庚)의 딸이다. 아내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기(安璣)[1451~1497]의 딸이다. 아들은 경암(敬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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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선비들이 자연경관과 풍류를 즐길 목적으로 건축한 누각과 정자. 누정(樓亭)은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경관을 즐기며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전통건축 형식의 공간이다. 사방을 널리 조망할 수 있게 높게 지은 누각(樓閣)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심성을 함양(涵養)[능력이나 품성 따위를 길러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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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희운의 문집. 정희운(鄭熙運)[1678~1745]의 자는 태오(泰吾), 호는 동봉(東峯)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정세정(鄭世楨)이다. 어머니는 남원양씨로, 사재감 참봉 양지영(梁地英)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구라마을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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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정자. 지곡면사무소에서 병곡지곡로를 따라 약 1㎞를 가다 개평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에는 도곡서원이 있으며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평촌천의 좌안에 있다. 만귀정은 평촌천의 좁은 곡부이며 평촌천이 급경사를 이루는 곳이어서 개평폭포가 형성되어 있다. 바위가 넓게 자리해 경관이 뛰어나고 물소리도 들린다. 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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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양군수를 지낸 매계 조위의 문집. 조위(曺偉)[1454~1503]의 자는 오룡(五龍)·태허(太虛), 호는 매계,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조계문(曺繼門)이다. 어머니는 재취부인 문화유씨(文化柳氏)로, 유문(柳文)의 딸이다. 자형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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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복현의 문집. 정병하(鄭昞夏)와 정우진(鄭禹鎭)은 모두 발문에 간행 시기를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권도용(權道溶)[1877~1936]이 발문에서 ‘병자년’이라 했으니 생몰년에 비추어 보면 1936년이다. 정복현(鄭復顯)[1521~1591]의 자는 수초(遂初), 호는 매촌(梅村)이다. 본관은 서산(瑞山)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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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과 관련한 한문학, 국문학 작가와 작품. 함양군에는 신라의 최치원부터 고려·조선의 뛰어난 문인들이 관리로 부임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의 함양군에서도 여러 문인들에 의해 왕성한 문학 창작 활동으로 계승되고 있다. 함양군의 최고(最高) 문인은 최치원(崔致遠)[857~?]이며, 최고(最古) 문인도 최치원일 것이다. 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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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인 일두 정여창의 문집.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수옹(睡翁), 시호는 문헌(文獻),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함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 문하에서 배웠다. 1490년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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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정동의의 문집. 정동의(鄭東義)[1815~1883]의 자는 형지(亨之), 호는 백암(栢菴)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정덕화(鄭德和), 어머니는 신창표씨(新昌表氏)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학림(學林)에서 태어났다. 저포(樗圃) 노광주(盧光柱), 자애(紫崖) 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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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에 있는 공원. 경상남도 함양군 위천 연안에 조성된 함양 상림은 신라 때 최치원이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을의 중심부를 흐르던 위천의 물길을 바꾸며 쌓은 둑 위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함양 상림은 오랜 기간 홍수피해를 막는 역할을 하며 잘 보존되어 왔는데 거주 구역의 확대 등으로 중간부가 파괴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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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있는 지역 전통주인 솔송주를 주제로 한 전시관.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조선 전기 일두 정여창이 태어난 곳으로, 현재까지도 하동정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개평마을에서는 정여창 문중의 자손들이 500년간 가양주 ‘솔송주’를 만들어오고 있으며, 솔송주는 조선 시대 성종에게 진상할 만큼 명주로 알려져 있다. 솔송주 문화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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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 있는 숙박 서비스 제공 시설. 숙박시설은 숙박업이 이루어지는 시설로 현재 우리나라 숙박시설의 유형은 호텔업, 휴양 콘도미니엄업, 관광 펜션업, 일반 숙박업, 유스 호스텔, 민박, 휴양 펜션 등 7가지 형태로 나누어져 있다. 함양군은 경상남도의 서북단에 자리하고 있어 예로부터 영남과 호남의 경계를 이루던 소백산맥에 있는 지역이다. 동서와 남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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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 전해 내려오는 먹을거리와 관련된 생활. 함양군은 바다와 멀고 심산유곡이 많아 오래전부터 좋은 쌀이 재배되었으며, 산에서 나는 갖가지 나물로 음식을 해 먹었다. 함양 지역의 경우 고기를 주재료로 쓰지 않고 채소를 주원료로 하여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심산유곡의 산채요리가 특별하다. 전통시대 함양인들이 먹던 밥은 논농사와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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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우명의 문집. 노우명(盧友明)[1471~1523]의 자는 군량(君亮), 호는 신고당(信古堂)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노분(盧昐)이다.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로, 신선경(愼先庚)의 딸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에게 수학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만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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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된 향토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71년(고종 3) 전국 읍지 편찬 사업에 의하여 편찬·상송된 경상도의 각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함양부읍지」는 『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되어 있다. 1871년에는 함양군이었음에도 읍지 제목은 「함양부읍지」로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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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속한 법정리. 원평리(院坪里)는 원촌동(院村洞)과 서평동(瑞坪洞)을 병합하면서 한 글자씩 따서 원평리라 이름하였다. 원촌동은 상원(上院)마을이라고도 하며 하원(下院)마을인 서평동보다 위인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된다. 또한 원촌동은 남계(灆溪)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마을에 남계서원(灆溪書院)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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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일두 정여창의 문집.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수옹(睡翁)이다. 본관은 하동이다.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함께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하에서 배웠다. 1490년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시강원설서를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로 인하여 함경도 종성(鍾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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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 출신의 학자. 임대동(林大仝)[1432~1503]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이다. 자는 정숙(貞叔), 호는 회헌(晦軒),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임대동의 증조할아버지는 임유소(林有巢), 할아버지는 교수 임상재(林尙梓), 아버지는 임전성(林全性)이다. 부인은 금산김씨 김연생(金淵生)의 딸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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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문신. 임희무(林希茂)[1527~1577]의 자는 언실(彦實), 호는 남계(蘫溪)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아버지는 참봉 임각(林珏)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시민(權時敏)[1464~1523]의 딸이다. 남계 임희무는 1527년(중종 22) 함양군 동쪽 서평촌[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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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 존재하는 전통건축 형식으로 건립된 가옥. 경상남도 함양군은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 출신인 일두 정여창[1450~1504]과 옥계 노진[1518~1578]이 있는데, 모두 함양군 개평리 출신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전통가옥은 개평마을의 고택들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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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신. 정복주(鄭復周)[1367~?]의 자는 사고(師古), 호는 죽당(竹堂)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아버지는 정지의(鄭之義), 아들은 정육을(鄭六乙)[?~1467], 손자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다. 태종 이방원(李芳遠)[1367~1422]이 정복주를 자신의 동년(同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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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생의 학자. 정수민(鄭秀民)[1577~1658]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 할아버지는 정희설(鄭希卨), 아버지는 정언남(鄭彦南)이다. 어머니는 송씨(宋氏)이다.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동리(東里)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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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으로 사림파 계열에 속하는 성리학자이자 문신.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수옹(睡翁)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정지의(鄭之義)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 정복주(鄭復周)[1367~?], 아버지는 함길도병마우후 증한성부좌윤 정육을(鄭六乙)[?~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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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일두 정여창의 신도비. 정여창(鄭汝昌)[1450~1504]은 본관은 하동, 자는 백욱(伯勖), 호는 일두(一蠹),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정여창은 안음현감으로 5년간 재임하면서 백성들에게 인정을 베풀고 문교(文敎)를 일으키는 등 덕행을 행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해 1689년에 신도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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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서원에서 일두 정여창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 이 책판은 모두 369매로,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것이다. 그의 문집은 정구와 정여창의 증손자 정수민(鄭秀民)이 함께 유문을 수습하고, 편집하여 1635년(인조 13) 처음 발행하였다. 이어 1743년(영조 19)에 도암(陶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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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정여창의 생애와 정치활동, 학문과 사상 그리고 당시 영남 사림의 동향을 고찰. 정여창은 1450년(세종 32) 경상도 함양의 덕곡리(德谷里) 개평촌(介坪村)[지금의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자택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정지의(鄭之義)로 판종부시정(判宗簿寺正)을 역임했으며, 할아버지 정복주(鄭復周)는 고려 말 판전농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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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의 의병. 정유문(鄭惟文)[1537~1597]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자는 현보(顯甫), 호(號)는 행촌(杏村)이다. 정유문은 경상남도 안의현[지금의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정주(鄭輳), 어머니는 신창표씨 진사 표응(表凝)의 딸이며, 부인은 신온(申溫)의 딸이다. 정유문은 무과에 급제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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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한 등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진주강씨는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하여 본관을 진양(晉陽)[지금의 진주(晉州)]로 하는 토성(土姓)을 하사받았다.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삼고 본관을 진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16세손 강도(姜度)에 이르기까지 가계가 외줄로 내려오다가 강도 이후 강희경(姜希經)과 강종일(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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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656년에 정수민이 편찬하고 1888년에 후손들이 간행한 향토지. 정수민(鄭秀民)[1577~1658]은 조선 후기 학자이다.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동리(東里)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증손자이다. 학덕과 품행이 정여창과 비슷하다 하여 소일두(小一蠹)라고 불리었다. 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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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서원의 문루. 함양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하여 1552년에 건립되었다. 1566년에 ‘남계’라 사액되었으며 정유재란(1597) 때 소실되었다. 1603년에 나촌(羅村)에 중건되었다가 1612년에 옛 터인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로 이건되었다. 함양 남계서원은 한국에서 소수서원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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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한문으로 이루어진 학문 및 문학 전반을 일컫는 말.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문학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의 고운 최치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최치원은 당시 천령군수로 부임하여 상림(上林)을 조성하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고, 그가 자주 오르내리던 관아 옆 누각을 후인들이 학사루(學士樓)라 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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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창건된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서원. 조선 시대 동방 5현 및 동국 18현 가운데 한 사람인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진 양성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1566(명종 21)년에 ‘남계(灆溪)’를 사액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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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창건된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서원. 조선 시대 동방 5현 및 동국 18현 가운데 한 사람인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진 양성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1566(명종 21)년에 ‘남계(灆溪)’를 사액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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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빚어진 술. 송순주(松筍酒)는 소나무 새순으로 만든 술로 조선 시대 때부터 내려온 가양주(家釀酒)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일두 정여창을 배출한 하동정씨 집안에서 제사나 경조사 때 제조해 사용한 술이었으나, 현재는 ‘솔송주’란 이름으로 시판되고 있다. 하동정씨 집안 며느리 박흥선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5호 함양 송순주 제조 기능보유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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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빚어진 술. 송순주(松筍酒)는 소나무 새순으로 만든 술로 조선 시대 때부터 내려온 가양주(家釀酒)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일두 정여창을 배출한 하동정씨 집안에서 제사나 경조사 때 제조해 사용한 술이었으나, 현재는 ‘솔송주’란 이름으로 시판되고 있다. 하동정씨 집안 며느리 박흥선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5호 함양 송순주 제조 기능보유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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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임술증의 처 밀양박씨의 정려.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번지 상림공원 역사인물공원에 있다. 1797년(정조 21)에 세워졌다. 비문은 일두 정여창의 7대손인 정덕제(鄭德濟)가 지었다. 정려비는 원래 함양향교 입구에 있었으나 1932년에 도로 확장공사로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 111-69로 옮겨졌다. 이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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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조선 전기에 건립된 일두 정여창의 주택. 일두 정여창(鄭汝昌)[1450~1504]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연루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 우안에 있는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에 있고 천왕봉의 동쪽 산록경사지에 있다. 함양 일두 고택은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자리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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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조선 전기에 건립된 일두 정여창의 주택. 일두 정여창(鄭汝昌)[1450~1504]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연루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 우안에 있는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에 있고 천왕봉의 동쪽 산록경사지에 있다. 함양 일두 고택은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자리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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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정여창의 묘역.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묘소는 1504년에 사망한 직후 일어난 갑자사화로 부관참시를 겪었던 곳이다. 함양 정여창 묘역 내에는 정여창의 묘와 정경부인 완산이씨의 묘, 동계 정온의 신도비, 각종 석물 등이 있어서 조선 전기 사대부의 무덤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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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있는 신고당 노우명의 신도비와 그 부부의 묘표. 옥계(玉溪) 노진(盧禛) 신도비의 위쪽에 있다. 신도비는 남향으로 안장된 노우명(盧友明)[1471~1523] 부부 쌍분의 축대 아래의 동쪽에서 서향으로 서 있다. 묘표는 각각의 분묘 정면에 남향으로 서 있다. 신도비는 노우명의 아들 노진이 이조판서를 지내게 되자 증직되어 15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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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풍천노씨의 대종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의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 천왕봉의 동쪽 산록 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함양 일두고택이 있고, 그 동쪽에 풍천노씨 대종가가 있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개평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중앙교가 있고, 중앙교에서 서쪽으로 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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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풍천노씨의 대종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의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 천왕봉의 동쪽 산록 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함양 일두고택이 있고, 그 동쪽에 풍천노씨 대종가가 있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개평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중앙교가 있고, 중앙교에서 서쪽으로 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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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정.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화림동 계곡의 다볕자연연수원 앞쪽 남강변에 있다. 1802년에 서강(西岡) 전세걸(全世杰)과 전세택(全世澤)이 조선의 5현이라 불린 일두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함양 군자정은 정여창의 처가가 있던 곳으로, 해동의 군자가 머무른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하였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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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과 관련한 유명한 문인들의 옛시와 현대시를 엮어 만든 향토 시집. 『함양예찬』은 2002년, 한국문인협회 함양지부에서 현대 시인들이 함양을 방문하여 노래한 250여 편의 현대시와 옛 선인들이 쓴 300여 수의 한시를 정리한 것이다. 함양군의 빼어난 경치에 탄복하고 지리산을 유람하였던 선인들의 시와 현대 시인들이 함양군의 아름다움에 대해 쓴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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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건립된 고택. 우명하교길에서 효리길로 진입하면 마을회관이 보이고, 마을회관 바로 뒤에 있다. 함양 우명리 정씨 고가는 우명천의 오른쪽 언덕에 있는 침식성 저구릉인 승안산 말단부에 남동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우명리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7대손 정희운(鄭凞運)이 경종 연간[172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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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건립된 고택. 우명하교길에서 효리길로 진입하면 마을회관이 보이고, 마을회관 바로 뒤에 있다. 함양 우명리 정씨 고가는 우명천의 오른쪽 언덕에 있는 침식성 저구릉인 승안산 말단부에 남동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우명리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7대손 정희운(鄭凞運)이 경종 연간[172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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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화림동천의 수려한 자연경관에 세워진 누정과 그 속에서 조화를 추구한 선비 문화 이야기.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이다. 대개 살림집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건축물이다.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정신적 기능이 강조된 공간이다. 원래 방이 없이 마루만 있고 사방이 두루 보이도록 막힘없이 탁 트였으며, 아름다운 경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