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읍지』 「함양부읍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252
한자 咸陽府邑誌
영어공식명칭 Hamyangbueupji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71년연표보기 - 『영남읍지』 11책에 수록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1[신림동 산 56-1]
성격 향토지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된 향토지.

[편찬/간행 경위]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71년(고종 3) 전국 읍지 편찬 사업에 의하여 편찬·상송된 경상도의 각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함양부읍지」『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되어 있다.

[서지적 상황]

1871년에는 함양군이었음에도 읍지 제목은 「함양부읍지」로 되어 있다.

[형태]

크기는 세로 31.2㎝, 가로 20.8㎝이다. 필사본이다. 표지는 능화문황지(菱花紋黃紙), 본문은 저지(楮紙)를 각각 사용하였다.

[구성/내용]

『영남읍지』 「함양부읍지」 의 구성은 지도,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 성씨, 산천, 풍속, 방리(坊里)[마을], 호구(戶口), 전부(田賦)[토지세], 군액(軍額)[군량미 양], 성지(城池), 창고, 관방(關防), 진보(鎭堡), 학교, 단묘(壇廟), 능묘(陵墓)[무덤], 불우(佛宇)[불당], 궁실(宮室), 누정(樓亭), 도로,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조선시대에 벼슬아치에게 주던 봉급], 환적(宦蹟)[벼슬아치로 있을 때의 행적], 과거(科擧), 인물, 제영(題詠)[제목을 달아서 시를 읊는 것 또는 그러한 시가], 비판(碑板)으로 되어 있다.

『영남읍지』 「함양부읍지」 의 항목은 통치기초정보와 지역의 문화·역사·인물 기록에 고르게 배치되었다. 지도는 산세·하천을 나타내고, 읍성(邑城)과 구산성(舊山城)을 표시하고, 방리(坊里)·사찰·교량·역(驛)·누대(樓臺)의 이름을 네모난 칸 안에 기재하였다. 귀산성(龜山城)은 성지(城池) 항목에 사근산성(沙斤山城)으로 되어 있다. 귀산성 밑에 사근도(沙斤道)의 본역인 사근역이 표시되어 있다. 귀천서원(龜川書院), 도곡서원(道谷書院), 당주서원(溏洲書院), 백연서원(栢淵書院)에는 ‘훼철(毁撤)’이라고 부기하였다. 일두 정여창(鄭汝昌)[1450~1504]을 향사한 남계서원(灆溪書院)은 ‘훼철’이란 부기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영남읍지』 「함양부읍지」 는 전반에 걸쳐 함양부 때의 읍지를 저본으로 하고 일부 기사만 당대 사실을 반영하여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영남읍지』 외에도 1832년경의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함양군읍지」, 1899년경에 편찬된 『함양군읍지』와 비교 검토하면 19세기 함양군의 변화상이 읍지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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