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C0300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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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Jangnal Jungui Jangnal 'Baekjungjang' |
영어의미역 | Best of the Best, Baekjungjang Market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순석 |
백암장에는 7월 백중이면 인근의 주민들이 몰려와 더욱 장사진을 이뤘다. 이 날은 씨름대회가 열리고 사당패들이 들어와 한바탕 놀고 물러났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백중날 여는 동네잔치나 연희가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그러나 백중장날에 열리는 백암장만큼은 예전의 흥겨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백중이 가까워지면서 세벌 논매기가 끝나게 된다. 따라서 농사의 힘든 일은 거의 다 끝난 셈이 된다. 마을마다 논매기가 끝나면 농사일을 한시름 놓게 되니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논매기를 마치고 호미를 씻는다는 의미에서 이날을 ‘호미씻이’라 한다. 세벌 논매는 날 일꾼을 많이 부리는 부잣집에서는 집안의 상머슴에게 옷을 해 주고, 일꾼들을 위해 돈을 내어놓고 하루 푹 쉬도록 배려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니 이맘 때 열리는 ‘백중 장날’은 하루 거하게 먹고 마시러 나온 농민들로 흥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주인에게 돈까지 받고 나온 경우에는 장터에서 밤늦도록 사람들과 어울려 놀았다.
평소 관이나 번영회 눈치를 보면서 쫓겨 다니던 야바위꾼들의 난장판이 벌어졌다. 이날만큼은 묵인되던 야바위난장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국산품애용’이라고 해서 지금의 빙고게임 같은 것도 있었고, 육모로 깎아 만든 팽이를 돌려 나온 수의 배수만큼 가져가는 ‘오곱’등 다양했다. 이렇게 장구경에 야바위꾼에 술 한 잔씩 곁들이며 돌아다니다보면 청미천 모래사장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다는 얘기에 그리로 몰려가곤 했다.
15년 전까지 해마다 백중장날 백암장에서는 씨름대회가 벌어졌다. 이 씨름대회에는 백암면 사람들뿐만 아니라 용인, 이천에서도 왔고, 멀리 충북 음성에서까지 씨름대회에 참가하러 온 일도 있었다. 이날 씨름대회에서 장원을 하면 송아지 한 마리가 주어졌다. 송아지 등엔 거적이 덮어져 있고 그 거적에는 “장원”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장원을 한 최고의 장사는 종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다녔으며, 돌아오는 길에 꼭 개천에 들려 송아지에게 물을 먹였다고 한다.
백중장의 또 다른 볼거리는 뜨내기 사당패들이었다. 해방 직전까지 이들 사당패는 전국 유명한 5일장을 찾아다니면서 연희를 했는데, 당시 쇠전으로 유명한 백암장을 빠뜨릴 리가 없었다. 이들은 장터를 돌면서 풍물을 치고 박첨지 놀이 등을 연행하면서 장터의 흥겨움을 돋구었다. 또한 씨름판이 벌어질 때는 판을 중심으로 둘러서서 긴박감을 연출하기도 했다. 마을마다 풍물패 활동이 왕성했던 시기에는 각 마을의 풍물패가 각기 농기를 들고 장터에 나와 함께 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