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B0300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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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Saeunjeong |
영어의미역 | Saeunjeong Pavilion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기와집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선영 |
지곡동으로 향하는 삼거리에는 좌우로 큼지막한 주유소가 있다. 좌회전은 지곡동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직진은 화성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그 삼거리 오른쪽 주유소 옆에는 작은 글씨로 ‘사은정’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50m쯤 올라가보니 아늑한 전통 정자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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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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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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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곡리 입구
사은정은 조선 중종조의 학자인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 선생이 종형제인 방은 조광보(趙光輔), 회곡 조광좌(趙光佐), 음애 이자(李耔)[1480~1533] 선생 등과 도의로 친우를 맺고 은거하여 노년의 생활을 즐기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사은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은거하면서 농사짓고, 나무하고, 고기낚고, 약초캐는 네 가지 즐거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1796년(정조 20년)에 정암 조광조와 음애 이자, 회곡 조광좌, 방은 조광보 선생의 후손들이 힘을 합하여 정자를 고쳐지었는데, 서재(書齋)를 다시 짓고 방도 만들었으며 단청도 다시 하였다.
1876년(고종 13년)에는 정자가 지은 지 오래되어 훼손되었으므로 후손들이 중창(重刱)하였으며, 1925년과 1988년에 다시 보수하여 고쳐, 현재의 건물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기록문도 친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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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정 안내문
사은정은 현재의 한국민속촌 옆 야산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기록에는 정자 뒤쪽 언덕 위에는 소나무 사이로 바위가 드러나 있으며 전면으로는 지곡동의 들이 펼쳐지고 낮은 야산들이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어 풍광이 매우 좋다지만 현재는 개발에 밀려 노송만이 세월의 덧없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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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정 정면에 바라보이는 야산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장식이 새의 부리 모양과 같고, 방과 대청을 좌우에 나란히 놓았으며 전면에 개방된 툇간을 두고 가느스름한 기둥으로 난간을 설치하였다. 1988년에 후손들이 만든 중수기 현판이 걸려 있다.역사와 의미가 깊은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정자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있다. 정자를 뒤로 하고 나오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유학을 논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5월의 녹음과 어울러져 금새 갓 쓰고 도포 입은 그 분들이 대청 앞으로 걸어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