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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4122
한자 龍蔘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특산물/특산물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조(생산) 시기/일시 19세기 말 재배시작
성격
재질 일반 삼에 비해 사람을 많이 닮음
용도 다년생 식물인 약재

[정의]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생산되는 인삼.

[개설]

19세기 말부터 용인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용인의 삼은 일제강점기에 번창하며 발전 해왔다. 용인에서 재배한 인삼은 사람과 많이 닮고 그 크기가 다른 것보다 큰 것으로 잘 알려져 용삼(龍蔘)이라는 고유명사를 얻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

용인의 인삼재배는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1890년대 초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 이경로가 도보로 개성에 가서 씨앗을 구해다 재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원삼, 백암 지역으로 확대되고, 일제강점기에는 용인 동부지역으로 확산되어 인삼재배가 활성화 되었다. 강점기에 인삼재배 지역이 늘어가며 양질의 인삼이 생산, 출하됨에 따라 용인에서 생산되는 인삼이라 하여 용삼(龍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제조(생산) 방법 및 특징]

용인의 인삼 재배법은 다른 지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삼재배에 적합한 땅을 구해 1년간 휴경하며 거름을 넣고 여러 번 갈아엎는다. 종자는 모래와 섞어 배아를 형성시키는 개갑(開匣)을 한 뒤 밭에 심으며, 1년간 자란 것을 묘삼이라고 하는데 이를 본포(本圃)에 심는다. 본포에 식재한 후, 5년이 지나면 수확하는데, 이를 묘삼기간 1년을 합쳐 6년근이라고 한다.

[현황(관련 사업 포함)]

용인 지역에서 인삼의 기업적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이후로 보인다. 6.25전쟁 이후 개성에서 월남한 최백희, 허명룡, 박성인 등이 모현읍 갈담리에서 대규모 재배를 시작하여 용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용인은 홍삼(紅蔘) 원료의 중요 산지였으며, 한때 용인인삼조합은 이천, 여주, 화성, 시흥, 강원도까지 관할하여 용삼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70년대 이후 용인 지역이 산업화와 더불어, 연작(連作)이 어려운 인삼재배의 특성상 새로운 경작지를 따라 이동하면서 상대적으로 용인 지역의 인삼재배는 줄어들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용인인삼조합이 이천으로 이전되어 이름까지 동부인삼농협으로 개명되었고, 용인 지역의 인삼재배는 극히 적은 사람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참고문헌]
  •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민중서관, 2008)
  • 이경로(19세기 말 원삼에서 인삼재배 한 사람)의 손자: 이종문 증언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3 행정지명 현행화 모현면에서 모현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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