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4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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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旭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태근 |
[정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서 1986년부터 1990년 타계하기까지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한 서양화가.
[개설]
장욱진은 1917년에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에서 아버지 장기용과 어머니 이기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결성이다. 양정고보와 일본 동경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신사실파 동인에 참가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내기도 하였다. 1986년부터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의 한옥을 사서 입주하였으며, 1990년 갑자기 발병하여 향년 74세로 타계하였다.
[활동사항]
장욱진의 화가로서의 활동은 1948년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결성한 신사실파 동인에 참가하면서부터이다. 1954년부터 6년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동양미술대전 등에 출품하였으며 1956년부터 세차례 국전심사위원을 지냈다. 1960년 부터 남양주의 덕소에 살면서 1964년 1회 개인전과 1974년 2회 개인전을 열었고, 1975년 서울 명륜동으로 화실을 옮겼다. 1980년에는 수안보에 화실을 지어 살았으며, 1986년부터 용인 마북리에 한옥을 보수하여 지냈다. 1990년 타계하기까지 미국 뉴저지에서 개최된 한국현대회화전에 출품하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그의 작품을 보면 향토성과 서장성이 짙은 화풍을 일구었으며, 동양적인 수법에 동양적 철학사상을 담아냈다는 평을 듣는다.
[저술 및 작품]
그의 저술로는 1976년 수상집인 『강가의 아틀리에』가 있으며, 다수의 작품집이 있다. 그의 작품은 21세에 그린 「공기놀이」를 시작으로 「까치」, 「두아이」, 「집」, 「가로수」 등 800여 점이 있는데, 이중 720여 점이 현존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상훈과 추모]
1986년 중앙일보가 제정한 예술대상을 수상하였다. 사후인 1991년 충남 연기군 동면에 탑비를 세우고 추모전시회와 추모문집 『장욱진이야기』가 출간되었다. 2004년 11월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여 기념전시회와 추모행사가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