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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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寬俊 |
영어음역 | Park Gwangjun |
이칭/별칭 | 염광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현범 |
[정의]
일제강점기 개신교 순교자.
[활동사항]
염광(塩光) 박관준은 1875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출생하였다. 1900년경 개신교 신자가 되었으며, 한방 의술을 배워 1917년 조선의생(朝鮮醫生: 지금의 의사) 면허를 받고 개업하여 193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십자의원을 운영하였다. 개천교회(价川敎會) 장로로 재임하던 중 1935년경부터 일제가 개신교 신자들에게도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하자, 박관준은 평남지사와 총독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그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1938년 일본 동경(東京)으로 건너가 제74회 제국의회(帝國議會)를 방청하던 중 회의장에 「동아대국교개종헌의서(東亞大國敎改宗獻議書)」를 살포하다가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되었다. 그 후에도 계속 종교의 자유와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벌이다가 피검되어 복역하던 중 6년 동안의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3월 1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염광 박관준 장로 순교추모비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추계리 산 84-1번지[추계로 235]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앞 광장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