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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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蓮寺大雄殿 |
영어음역 | Baengnyeonsa Daeungjeon |
영어의미역 | Main Temple of Baengnyeon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4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정미 |
성격 | 불교건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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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 다포양식 |
건립시기/일시 | 1990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43 |
소유자 | 백련사 |
[정의]
1999년 중창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의 중심 불전.
[개설]
백련사는 서기 802년(신라 애장왕 2년)에 신응선사가 창건한 용인 지역의 고찰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삼지 않고 대적광전에서 주로 모시는 삼신불(三身佛), 즉 청정법신(淸淨法身)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원만보신(圓滿報身)인 노사나불,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위치]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있는 백련사의 중심에 있는 불전으로서, 마당 뒤편에 자연석 석축을 마련하여 높인 대지 위에 남향하고 있다. 서쪽에 지장전이 있고 동쪽에 삼성각이 있다.
[변천]
백련사는 801년(신라 애장왕 2)에 신응조사가 개산 창건한 이후 무학대사와 천공대사 등이 수선 전법한 유서 깊은 선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절의 대부분이 부서지거나 소각되었다. 이에 1988년 주지로 부임한 성월화상이 당시 신도회장이던 백산 허남용의 시주를 받아 1990년에 대웅전과 범종각 등을 중창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도리통은 어간을 협간에 비해 약간 넓게 설정하였다. 양통은 중앙의 칸을 전후 툇간에 비해 약간 넓게 설정하였는데, 툇간의 주간을 넓게 설정한 편이어서 전체적인 편면은 방형에 가깝다. 기단은 화강석을 거칠게 마감한 장대석을 이용해 만든 두벌대이며, 정면 중앙에는 용을 조각한 소맷돌이 있는 계단을 두었다. 기단 윗면은 장대석 화강석판을 붙여 마감하였다. 복련을 새긴 원형초석을 사용하였으며, 기둥은 모두 원주이다.
정면 어간 양쪽의 기둥 머리에는 용두를 조각하여 끼웠으며, 측면과 후면의 평주 위에는 안초공 형식으로 초각한 부재를 끼웠다. 이 부재는 평방을 감싸지는 않아서 장식적인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공포는 다포식으로 도리통 어간과 양통 중앙 칸에는 3개, 도리통 협간과 양통 툇간에는 각 2개씩의 주간포를 배열하였다. 외부의 포벽에는 여래좌상을 그렸다. 각 공포는 외7, 내15포의 다포식으로 건물 규모에 비하여 포수(包數)가 많은 편이다. 특히 내부는 15포로 하여 살미 내단의 연봉과 연꽃을 새겨 매우 화려하게 장엄하였다.
살미는 초제공, 이제공, 삼제공, 사익공, 오운공의 형식으로 조선시대 후기 건축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본존을 모신 불단은 3단으로 구성하고, 각 면에는 코끼리·호랑이·새·거북·사자·용 등 각종 동물을 조각하였다. 불단 위에는 각각 앙련과 복련을 새긴 연화대좌 위에 앉아 계신 삼신불을 모셨다. 전각 안에 있는 18나한상은 조선 전기 무학대사가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가여래상은 통견의 법의를 입었으며, 석가여래의 수인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비례가 부자연스럽다. 대웅전 안에 봉안된 신중탱화는 조선 말기인 1869년(고종 6)에 조성된 것으로서, 탱화를 조성한 시기와 조성한 사람 등을 기록한 화기(畵記)에 따르면, 수원에 있는 만의사의 산내암자인 도성암에서 처음 조성·봉안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