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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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馹永 |
영어음역 | Jeong Il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진각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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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
성별 | 남 |
생년 | 1873년 |
몰년 | 미상 |
본관 | 미상 |
[정의]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정일영은 1900년 통신사(通信司) 전화과(電話課) 주사, 1904년 환구단(圜丘壇) 사제서령(祀祭署令), 봉상사(奉常司) 주사 등을 지내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후 해임되었다.
일제강점 후 1915년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의 성낙형(成樂馨)·김주원(金胄元) 등과 연결되어 고종의 해외 망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박봉래(朴鳳來)·심인택(沈仁澤) 등과 함께 경각서(警覺書)를 작성·배포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신한혁명당은 1915년 이상설(李相卨)과 박은식(朴殷植) 등이 상하이[上海]에서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로서, 활동의 근거지를 베이징[北京]으로 옮긴 뒤 광무황제를 당수(黨首)로 추대하고 비밀리에 망명 계획을 세웠다.
이들의 계획은 광무황제를 베이징으로 망명시킨 뒤 중국·독일과 연맹을 맺어 일본과 전쟁을 치러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제는 독일의 조차지였던 중국의 청도(靑島)를 점령하면서 독일과 대립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독일이 유럽 지역에서 승세를 굳힌 이후에는 반드시 일본과 일전을 겨룰 것으로 판단하고, 이 때 독일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여 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한혁명당에서는 고종과의 연결을 도모하였는데 이 때 정일영은 김승현을 설득하여 덕수궁(德壽宮) 내승(內丞) 염덕신(廉德臣)을 통하여 이 계획을 광무황제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이 일이 발각되어 붙잡혀 징역 8월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