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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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冑元 |
영어음역 | Kim Juwon |
이칭/별칭 | 김동만(金東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도형 |
[정의]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김주원은 대한제국의 군부 경리국 제1과장 3등 감독을 역임하였으며, 황해도 연안군과 전라남도 옥과군의 군수를 지내는 고위 관직에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관직을 사퇴하고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그 후 중국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하다가, 1915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신규식(申圭植)·박은식(朴殷植) 등이 해외 각지에 분산된 독립운동 세력을 연대해 결성한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에 들어가게 되었다.
김주원이 신한혁명당에 가입하게 된 것은 성낙형(成樂馨)이 중국 봉천에서 신한혁명당 한구(漢口)지부장이 될 것을 권유하자, 이를 쾌히 승낙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후 김주원은 1915년 7월 성낙형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여 광무황제와의 접선을 꾀하려 하였다.
그는 7월 14일 서울에 도착하여 동생인 김승원(金昇元)의 집에 투숙하면서 문서의 연락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10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