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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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反共犧牲者慰靈塔 |
영어음역 | Bangong Huisaengja Wiryeongtap |
영어의미역 | Anti-Communist Victims Memorial Monu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 28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인영 |
성격 | 위령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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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첨탑|화강암좌대 |
건립시기/연도 | 1986년 6월 25일 |
재질 | 화강암|오석 |
높이 | 1,200㎝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 산164-1 |
소유자 | 한국자유총연맹 용인시 지부 |
[정의]
1985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건립된 6·25전쟁 반공희생자 위령탑.
[개설]
1950년 9월 21일 밤 9시 15분경 한국전쟁 중에 전세가 불리해진 북한군은 북으로 복귀하면서 용인·광주·수원·오산·남양 등지의 반공인사 187명을 압송하였다. 북한군은 용인에 이르자 구덩이를 파게 한 뒤 압송하던 자들을 학살·매몰하였다.
그 가운데에서 이광섭·박용보 두 사람이 극적으로 살아나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유족들에 의하여 수습되었으나, 나머지 연고가 확인되지 않은 50여 구의 시신은 한 구덩이에 묻혔다.
[건립경위]
1985년 당시 『경기일보』 신창기 기자(지금의 『경기일보』 사장)가 용인 주재기자로서 이 사실을 알아내고 사재를 들여 묘역을 수축하는 한편, 제수를 장만하여 매년 9월 21일 제를 올렸다. 이와 같은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당시 반공연맹 용인시지부(지부장 인태운)가 주축이 되어 위령탑의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 탑의 건립에는 관내 초·중·고 학생들이 낸 성금 500만 원, 반공연맹 읍면 지부장단 500만 원, 읍·면 지도위원회에서 500만 원, 용인군청에서 지원금 1,000만 원 등 총 3,500만 원의 자금이 소요되었으며, 부지는 조종국이 200여 평을 희사하였다. 1985년 4월 10일 기공하고 같은 해 6월 25일 제막되었다.
[위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 289번지 용인에서 양평으로 가는 국지도 44호선의 대대리 입구 지점 우측에 있다. 연변에 대대천이 흐른다.
[형태]
탑의 좌대는 화강암이며, 3단의 탑신 하단은 흰 돌, 검은 돌, 흰 돌의 3겹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첨탑은 고난과 시련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금석문]
탑신 전면에는 “반공희생자위령탑”이라 제하였고, 기단부 좌·우에는 “민족화합”과 “민주통일”이라는 명문(銘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