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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량장 전투(1)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136
한자 金良場戰鬪-
영어음역 Gimryangjang Jeontu
영어의미역 Gimryangjang Battle(1)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950년 7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지도보기

[정의]

1950년 7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인민군의 남진을 지연하기 위해 벌어진 전투.

[개설]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인민군의 일부 부대가 김량장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자, 본대와 합류하지 못하고 있던 국군 제8연대 2대대가 급히 투입되었다. 이들은 인민군을 기습하여 김량장에서 축출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으나, 곧바로 인민군의 반격에 김량장 서쪽으로 이동했다.

[역사적 배경]

1950년 7월 3일 아침 한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보고를 받은 총참모장 정일권 소장은 7월 1일 부산에 도착하기 시작한 미군이 전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현 전선에서 인민군의 진출을 최대한 지연하기 위해 영등포와 수원 사이의 축차 진지에서 지연전을 전개하라는 작전 명령을 하달하였다.

[발단]

7월 2일 원주에서 이천으로 이동시켰던 국군 제6사단 19연대로부터 “적의 제2사단 선두 부대가 용인군 김량장 부근으로 진출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오자, 수원에 있던 국군 제8연대 2대대가 투입되었다.

[경과]

고백규(高白圭) 소령의 지위 하에 있던 국군 제8연대 2대대는 6월 27일 청량리 부근에 배치되었다가 이튿날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너 29일 수원에 집결하였다. 이 대대는 영등포 전선에 있던 연대 주력과 합세하지 못하고 농과대학의 교정에서 대기하던 중, 김량장 부근으로 적이 진출하고 있다는 급보를 받았다.

육군 본부의 명령에 따라, 대대는 7월 3일 오전에 차량으로 김량장으로 이동하여 김량장 전방 2㎞ 전방에서 공격 대형으로 마을로 진입했다. 그곳에서는 1개 대대 규모의 적이 마을을 점거하여 휴식 중에 있었다.

이에 대대의 60㎜ 박격포 6문으로 집중 사격을 가하면서 선제 공격을 감행하였고, 그 기세를 타고 경안천(慶安川)을 따라 북쪽으로 적을 구축하고, 김량장 북쪽 1.5㎞에 있는 234고지까지 점령하였다. 그 과정에서 76㎜ 박격포 2문과 중기관총 4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인민군의 역습이 시작되었고, 혼전이 전개되었으나 탄약 보급이 되지 않아 234고지를 지키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후 마을 서쪽 2.5㎞에서 수려선(水驪線) 철도를 끼고 그 남북에 진지를 다시 구축하여 적이 수원 방면으로 서진(西進)하는 것으로 막으려 하였다. 하지만 대대에 대한 더 이상의 공격이 없었고, 인민군은 그곳에서 안성(安城) 도로를 따라 곧장 남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과]

육군 본부가 수원에서 철수함으로써 김량장을 비롯한 서울과 수원 사이에서의 지연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개전 초부터 패배를 거듭하던 국군은 작으나마 승리를 거두었고, 또 이를 통하여 인민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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