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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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遠三面鑛山 |
영어음역 | Wonsam-myeon Gwangsan |
영어의미역 | Mine in Wonsam-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우상표 |
[정의]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있었던 광산.
[개설]
일제강점기 용인의 대표적인 광산이었으며 1960년대까지 있었다. 광산의 위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사암리를 중심으로 고당리와 미평리 일대에 걸쳐 있었다. 광산의 개발로 원삼면의 중심지였던 사암리 안골은 광산 임금 노동자, 일본인 광산업자와 기술자 등의 유입으로 인구가 급격히 늘기도 하였다. 또한 주변 주민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기존의 농촌 공동체가 약화되기도 하였다.
[건립경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의 광산 개발은 일제의 초기 자본주의 형성 과정에 필요한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일제는 1911년부터 1917년까지 조선 전체의 광물 자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는 중에 1915년 조선광업령을 공포하여 일본인의 진출을 적극 도모하였다. 용인 지역에서의 광산 개발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변천]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2년에 처음으로 57,351,360㎡에 달하는 면적의 광산 개발이 허가되었다. 그 후 1918년 15,098,490㎡ 면적의 광산 개발이 추가로 허가되었다. 채굴권자는 일본인이었으며 생산된 광종은 주로 금, 은, 연(鉛)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채굴 사업이 내국인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때 생산된 광종은 주로 사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