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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027
한자 崔震立
영어음역 Choe Jinrip
이칭/별칭 사건,잠와,정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재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구미동
성별
생년 1568년연표보기
몰년 1636년연표보기
본관 경주
대표관직 공주영장

[정의]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건(士建), 호는 잠와(潛窩).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된 최신보(崔臣輔)의 셋째 아들이다.

[활동사항]

최진립(崔震立)[1568~1636]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동생 최계종(崔繼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여 부장(部長)을 제수받았으나 신병으로 사퇴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결사대를 조직하여 서생포(西生浦)에 침입한 왜적을 무찌르고, 이어 도산(島山) 싸움에서 권율(權慄) 등과 함께 전공을 세웠다.

1600년(선조 33) 여도만호겸선전관(呂島萬戶兼宣傳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했다가 1607년(선조 40) 오위도총부도사(五衛都摠府都事)를 지내고, 1615년(광해군 7) 부사(府使)를 지낼 때 능창군(綾昌君) 전(佺)의 추대 사건에 연루되어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사면되어 가덕진절제첨사(加德鎭節制僉使)에 복직되고 공조참판(工曹參判) 등을 지냈다.

1630년(인조 8) 경기수사(京畿水使)로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되어 1634년(인조 12) 전라도수군절도사(全羅道水軍節度使)가 되었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공주영장(公州營將)으로서 군사를 이끌고 감사(監司) 정세규(鄭世䂓)를 따라 참전하여 용인 험천(險川)(현재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이르러 청군을 만나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에 『정무공실기(貞武公實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무(貞武)이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고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의 숭렬사(崇烈祠), 함경북도 경원군의 충렬사(忠烈祠), 울산광역시의 충의사(忠義祠) 등에 제향(祭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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