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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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霖 |
영어음역 | Jeon Rim |
이칭/별칭 | 위절(威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광 |
[정의]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 1482년(성종 13) 전주판관에 임용된 후 훈련원 판관·첨지중추부사·전라우수사 등을 거쳐 1492년 회령부사, 1500년(연산군 6) 해랑도초무사(海浪島招撫使), 1504년 좌상대장(左廂大將),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7년(중종 2) 다시 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한성부판윤 재직시에는 종실이었던 회산군(檜山君) 이염(李恬)의 집이 법도에 벗어나 지나치게 광대한 것을 시정케 하였다.
[학문과 사상]
청백리로 학문을 좋아하였고, 엄격하고 태연자약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맹문장이란 별칭으로 불리었는데, 아들이 행패를 부리자 살해하고도 태연할 정도로 준법정신이 투철하였다. 후세에 ‘조선 초기 법이 가장 옥처럼 빛난 때는 전림에게 법이 대행됐을 때’라는 말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위절(威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