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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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整 |
영어음역 | Im Jeong |
이칭/별칭 | 운봉,보덕,공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은숙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운봉(雲峰), 호는 보덕(輔德).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고, 증조할아버지는 부사(副使) 임세춘(林世春)이고, 할아버지는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임재(林榟)이며, 아버지는 사복시윤(司僕寺尹) 임태순(林台順)이다. 아들은 임인산(林仁山)·임명산(林命山)·임갑산(林甲山)이다.
[활동사항]
임정(林整)[1356~1413]은 고려 공민왕 대에 태어나 주로 활동한 시기는 조선 태종 대이다. 향리로 입신하여 녹사(錄事)·도염서령(都染暑令)을 거쳐 1385년(우왕 11)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1398년(태조 7)에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벼가 익지 않게 되자 백성들은 상수리와 밤을 주으러 다녔다. 당시 경상도도관찰사(都觀察使)로 있던 임정은 가을갈이를 한 후까지 잠정적으로 노비의 송사 판결을 정지한다는 보고를 올렸다.
1401년(태종 1)에는 충청도·경상도·전라도의 조운체찰사(漕運體察使)로 임명되었으며, 조운선(漕運船) 500척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어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삼도(三道)의 도체찰사겸수군도절제사(都體察使兼水軍都節制使)·조운염철사(漕運鹽鐵使)를 역임하였다.
1402년에는 삼도 도체찰사로서 조운선을 만들었는데, 경상도 111척, 전라도 80척, 충청도 60척이었다. 또한 삼도의 쌀과 콩을 배로 운반하였는데, 그 양이 모두 10만 2,314석이었다. 조정에서는 임정의 이같은 노고를 치하하여 말 1필을 내려 주었다. 이후 임정은 참지승추부사(參知承樞府事)를 겸하게 되었다.
1403년(태종 3)에는 임정이 조운선을 감독하지 않고 육로로 오는 바람에 30척이 바다 가운데에서 침몰하여 1,000여 명이 빠져죽고, 쌀 만 석을 잃게 되었다. 그러자 사헌부가 임정을 탄핵하였으나, 의정부에서 무죄 방면하였다. 곧이어 동북면도순문사겸병마도절제사가 되었다.
1405년(태종 5)에는 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세 통 가지고 왔다. 1407년에는 전라도 도절제사가 되었다가 형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에 동북면 도순문찰리사(都巡問察理使) 겸 영흥부윤(永興府尹)에 제수되었다. 1410년(태종 10)에는 형조판서로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2년에는 술을 금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서북면도순문찰리사로 있던 임정에게 약주(藥酒)를 마시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태종의 신임 정도를 알 수 있는 일화이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공혜(恭惠)이며, 특별히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이계공(李季拱)에게 교서를 내려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1482년[성종13]에 청백리에 뽑히고 사패로 산 40리를 받았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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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5 | 행정지명 현행화 | 이동면에서 이동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
2017.06.19 | 관직명 오류 | [변경 전] 제학(提學) 임재(林榟) [변경 후]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임재(林榟) |
2014.04.08 | [가계] 보완 | * 내용 추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고, |
2012.06.12 | 본관 수정 | 오 : 본관은 나주(羅州). 정 : 본관은 평택(平澤). |
2011.11.04 | 내용 수정 | 본관은 나주(羅州). 사용(司勇) 임규(林珪)의 손자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사용(司勇) 임규(林圭)의 손자이다. 46. 임정(林整) 1) 생년 1354년 ->생년 1356년 2) 대표관직 병조판서 ->대표관직 예조판서|형조판서 3) 임정(林整)[1354~1413]은 고려 공민왕 대에 태어나 ->임정(林整)[1356~1413]은 고려 공민왕 대에 태어나 4) 시호는 공혜(恭惠)이며, 특별히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이계공(李季拱)에게 교서를 내려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시호는 공혜(恭惠)이며, 특별히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이계공(李季拱)에게 교서를 내려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1482년(성종 13)에 청백리에 뽑히고 사패로 산 40리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