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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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埴 |
영어음역 | Lee Sik |
이칭/별칭 | 기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장리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기재(器哉). 이조판서(吏曹判書) 이경증(李景曾)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이혜(李嵇)이다. 아버지는 광주목사(光州牧使) 이희담(李喜聃)으로, 이희담에게는 부인이 두 명 있었다.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은 모두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첫째 부인은 현감 홍수업(洪受業)의 딸이며, 둘째 부인은 홍현(洪鉉)의 딸인데 이식은 둘째 부인의 소생이다. 부인은 풍양조씨(豊壤趙氏) 대사간 조경명(趙景明)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식(李埴)[1700~1767]은 1733년(영조 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얼마 후 목릉참봉(穆陵參奉)이 되었으며, 제용봉사(濟用奉事)·종부직장(宗簿直長) 등을 지내고 1739년(영조 15) 태복시주부(太僕寺主簿)가 되었다.
호조좌랑(戶曹佐郞), 형조좌랑(刑曹佐郞), 공조정랑(工曹正郞), 금부도사(禁府都事), 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 상의원첨정(尙衣院僉正), 사옹원첨정(司饔院僉正), 한성서윤(漢城庶尹), 강서현령(江西縣令), 예천군수(醴泉郡守), 일신현령(一新縣令), 이천군수(利川郡守), 단양군수(端陽郡守), 진주목사(晋州牧使) 등을 지냈다.
1753년(영조 29)에 상시봉원도감(上諡封園都監) 낭청(郎廳)이 되었으며 일신현령, 선혜랑(宣惠郞) 등으로 있을 때는 사사로운 이익을 챙겼다고 하여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묘소]
묘소와 묘비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