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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776
한자 魚允中
영어음역 Eo Yunjung
이칭/별칭 성집,일재,충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홍영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보은군
성별
생년 1848년연표보기
몰년 1896년연표보기
본관 함종
대표관직 탁지부대신

[정의]

조선 말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집(聖執), 호는 일재(一齋). 어약우(魚若愚)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어윤중은 9세에 어머니를,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밤에는 독서를 하였다. 20세 때인 1868년(고종 5) 지방유생 50명을 뽑아 바로 전시(殿試)를 볼 수 있는 칠석제(七夕製)에 합격하고, 이듬해인 186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정원 주서·헌납·교리·지평·필선을 거쳐 양산군수와 전라도 암행어사를 역임하였고, 이 때 올린 개혁안은 국왕과 대신들을 놀라게 하였다.

1881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한 사람으로 박정양(朴定陽)·홍영식(洪英植) 등과 함께 일본의 문물제도를 시찰하였으며, 또 청나라 톈진[天津]에서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 등과 회담한 뒤 같은 해 12월 귀국하였다. 1882년 다시 청나라에 파견되어 이홍장과 조미통상조약 문제를 심의·합의하였으며, 영국 대표와 만나 조영수호조규 문제, 독일 대표와 조독수호조규 문제를 협의하였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군과 함께 귀국하였다가 다시 청나라에 파견되어, 이홍장 등이 이미 초안해놓은 불평등조약인 조중수륙무역장정(朝中水陸貿易章程)에 조인하고 왔다. 1883년에는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로 임명되어, 조중수륙무역장정에 의거한 북방무역에서 조선측의 이익을 증진시키며 국경을 튼튼히 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1883년 3월에 청나라와 중강무역장정(中江貿易章程)을 협정하고, 6월에는 회령통상장정(會寧通商章程)을 협정하였으며, 도문강(圖門江)과 두만강의 국경지대를 조사하였다.

그의 이러한 활동의 공로로 1884년에 서북경략사와 함께 처음에는 병조참판, 뒤에는 호조참판을 겸임하였다. 1883년에 20개조로 된 과감한 정부기구 개혁안을 제출하여 그 실행을 요청하기도 하였는데, 이 개혁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1893년에 동학도들이 보은집회를 열고 교조신원(敎祖伸寃)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천명하여 호서·호남 지방이 동요하게 되자 양호순무사(兩湖巡撫使)로 파견되어 동학교도를 해산시켰다.

1894년에 갑오경장 내각이 수립되자 김홍집 내각과 박정양 내각에서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이 되어 재정·경제 부문의 대개혁을 단행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이 일어나고 김홍집이 살해되자, 고향인 충청북도 보은으로 내려가다가 용인의 어비울(이동읍 어비리)을 지날 때 산송문제(山訟問題)로 사감을 품은 사람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동래어사서계(東萊御史書啓)』·『수문록(隨聞錄)』·『서정기(西征記)』·『간독요초(簡牘要抄)』·『종정연표(從政年表)』 등이 있다. 근년에 『어윤중전집』이 간행되었다.

[상훈과 추모]

1910년에 규장각대제학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6 행정지명 현행화 이동면에서 이동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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