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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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孟達 |
영어음역 | Bae Maengdal |
이칭/별칭 | 달지(達之),양호(襄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재광 |
[정의]
조선 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곤산(昆山)[昆陽]. 자는 달지(達之),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곤산배씨(昆山裵氏)의 시조이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담력이 뛰어났으며 궁마(弓馬)와 병법에 능통했다. 1447년(세종 29) 내금위 사용(司勇)에 임명되었고 1454년(단종 2) 무과에 급제했다. 1464년(세조 10)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있을 때 진응사(進鷹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7년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制使)로 있을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공조판서 양성지(梁誠之) 등의 천거로 귀성군(歸城君) 준(浚), 어유소(魚有沼), 김국광(金國光) 등 문무 제장과 함께 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올랐다.
제주·안주·창성·종성 등의 읍을 다스리고 1481년 충청·경상 양도 병마절도사로 재직하였다. 일찍이 처첩(妻妾)의 문제로 용인 관아에서 공초(供招)를 받았는데, 그 문제로 1471년(성종 2)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서훈(敍勳)되고, 정헌대부(正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에 특진되었으며, 곤산군(昆山君)에 봉(封)해졌다. 이에 후손들은 배맹달(裴孟達)을 파조로 하고, 달성배씨(達城裵氏)에서 분적하여 곤산으로 본관을 삼았다. 시호는 양호(襄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