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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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吉祥 |
영어음역 | Park Gils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광준 |
[정의]
조선 후기 용인에 거주한 귀화인.
[활동사항]
북쪽 오랑캐 출신으로 광해군 초에 조선에 귀화하여 용인의 고을 5리 안에 있는 장터 큰길가에 7~8년 거주하였는데, 그곳은 크고 작은 행인들이 밤낮으로 오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하 16~18명을 거느리고 밤에 산행을 한다고 칭하면서 무리를 지어 행인이나 짐을 쫓아가 약탈을 일삼았다. 또한 읍내의 원전(元田)을 빼앗아 경작하거나 무성하게 자란 벼를 공공연히 베어가며, 수많은 우마(牛馬)를 멋대로 놓아서 길렀다.
백성들의 고발장에 따라 매번 차인(差人)을 보내 부르면 관차를 구타하여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나무하고 소 먹이는 촌사람들조차 감히 혼자 출입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에 1616년(광해군 8) 경기감사 김신원이 다른 고을로 옮기게 하는 대책을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임금도 받아들여 박길상은 남해도에 위리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