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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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奎鎬 |
영어음역 | Min Gyuho |
이칭/별칭 | 경원(景園),황사(黃史),지당(芝堂),충헌(忠獻)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시미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재광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원(景園), 호는 황사(黃史), 사호(賜號)는 지당(芝堂)이다. 증조부는 민백흥(閔百興), 할아버지는 민상섭(閔相燮), 아버지는 민치오(閔致五), 외조부는 김원식(金元植)이고, 아들은 민영소(閔泳韶)다.
[활동사항]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합격한 뒤, 명성황후가 왕비로 책립되자 중용되기 시작하여 1867년(고종 4) 이조참의로 등용되었고, 1869년 형조참판, 이어 이조참판을 거쳐 다음해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명성황후의 참모 가운데 한 사람으로 흥선대원군 축출에 힘썼다.
1873년 흥선대원군이 하야하고 민씨 정권이 국정을 장악하게 되자 민씨 일족의 대표적 정객으로 정권에 깊숙이 참여하게 되었다. 예조판서·이조판서를 지냈고, 무위영도총제(武衛營都摠制)를 역임하였다. 그 뒤 민씨 정권 내 쇄국을 지양하고 개항할 것을 내세우는 개국론(開國論)을 주장하여 조선왕조 개항의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878년 10월 우의정에 서임되었으나 7일 만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사상]
예서·행서·초서 등 글씨에 능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시미리 속칭 남진말 동쪽 산에 있었으나 지금은 파묘되어 터만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헌(忠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