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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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馹孫 |
영어음역 | Kim Ilson |
이칭/별칭 | 계운(季雲),탁영(濯纓),소미산인(少微山人),문민(文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광준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
[활동사항]
일찍이 용인 탁영봉(濯纓峰)의 한림대에서 김구(金龜) 등과 학문을 하였다. 그에 따라 봉우리도 김일손의 호를 따 탁영봉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이 되었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가 되었다가 곧 정자로서 춘추관 기사관을 겸하게 되었다.
이어 진주의 교수로 부임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고향에서 운계정사(雲溪精舍)를 열고 김종직의 문하가 되어 정여창·강혼 등과 교유하였다. 뒤에 예문관에 등용된 후, 청환직을 거쳐 1491년 사가독서하였고, 홍문관 수찬을 거쳐 이조정랑이 되었다.
성종 때 춘추관의 사관으로 전라도관찰사 이극돈의 비행을 비판하였고, 헌납으로 재직시 이극돈과 성준이 새로 붕당의 분쟁을 일으킨다고 상소하여 이극돈의 원한을 샀다. 사헌부 등의 관직을 지내면서 훈구파의 비리를 공격하고 사림파의 정계 진출을 도모하였다. 1498년(광해군 4)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앞서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이 이극돈을 통하여 연산군에 알려져 사형에 처해졌다.
[저술 및 작품]
문집에 『탁영문집』이 있으며, 「회로당기」·「속두류록」 등이 『속동문선』에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후 신원되고, 현종 때 도승지로 추증되었으며, 순조 때 다시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