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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객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489
한자 龍仁客館
영어음역 Yongin Gaekgwan
영어의미역 Yongin Inn
이칭/별칭 객사(客舍),용인객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조선시대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리들의 숙박 시설.

[개설]

객관의 건축적 형태는 궐패(闕牌)와 전패(殿牌)를 모시는 상징적 기능을 가진 주사(主舍)와 숙박 장소인 양 익사(翼舍)로 이루어지는데 주사의 지붕이 양 익사의 지붕보다 높게 되어 있어 공간의 위계를 나타내고 있다. 건축의 구조적 면에서도 주사의 양식이 익사의 양식보다 고급스러운 기법을 사용하여 우월한 공간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객관의 건물은 읍치 내 관아의 건물에 비하여 한 단계 높은 격식의 기법과 양식으로 지어졌다.

[제정경위 및 목적]

중앙에서 왕명을 받아 지방으로 행차하는 관리나 지방 관리의 순찰시에 숙박 시설로서 사용하기 위해 전국에 설치되었다. 또한 지방 수령이 객관에 안치된 궐패와 전패에 초하루·보름과 기타 국상이 났을 때 향궐망배(向闕望拜) 의식을 치루는 공간으로 제공되었다.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객관에 대한 기록은 궁실조(宮室條)에 있는데, 모든 지역의 객관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객관의 기능이나 성격상 전국의 대부분 지역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된 용인현의 객관 규모를 추정해 보면, 객관의 가운데 대청 3칸, 즉 전패와 궐패를 모시는 주사가 3 칸이며, 동서 익사인 동헌과 서헌이 각각 5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용인객관의 평면 구성은 주사가 정면 3칸 동서 익사가 각각 정면 6칸으로 정면은 전체 15칸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용인객관 앞에는 대문이 있었는데 3칸 규모이며 전퇴가 있다고 하였다. 객관 서쪽에도 1칸 규모의 작은 일각문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용인객관의 위치는 『여지도서』와 같은 지도류에서는 아사(衙舍) 약간 뒤에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으나 『용인현읍지』의 기록에는 “아사 앞 동쪽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객관에는 구성관이란 현판이 있다”고 하였다.

[변천]

관리의 공무상 이동 시에 제공되는 숙박 시설인 객관은 고려 때부터 설치되기 시작하여 군현제도가 확립되는 조선 초기에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 이후 근대 교통적인 수단과 제도 개편으로 대부분 기능을 잃었으며, 용인객관도 시세를 같이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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