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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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允謙先生墓 |
영어음역 | O Yungyeom Seonsaeng Myo |
영어의미역 | Tomb of Master O Yungyeo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산5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인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2월 12일 - 오윤겸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제10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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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오윤겸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분묘 |
양식 | 원형봉토분|쌍분 |
건립시기/일시 | 1636년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산5 |
소유자 | 해주오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오윤겸의 묘.
[개설]
오윤겸(吳允謙)[1559~1636]의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秋灘), 또는 토당(土塘)이다. 오윤겸의 본관은 해주이며, 보물 제1096호인 『쇄미록(瑣尾錄)』을 남긴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다. 오윤겸은 어머니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태몽을 꾼 뒤 잉태하여 초명을 성룡(星龍)이라 하였다.
15세 때인 1573년(선조 6), 외삼촌을 따라 용인에 내려와서 『시전(詩傳)』을 읽었으며, 25세 때 우계 성혼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오윤겸은 정철의 종사관이 되었다. 1617년 쇄환정사가 되어 일본에 잡혀갔던 150여 명의 포로를 데리고 돌아왔으며, 하극사(賀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33년에는 좌의정에 올랐다.
[변천]
오윤겸은 “나는 거룩한 임금을 만났으나 세상을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하였으며, 몸에는 덕이 없고 나라에 대하여는 공로가 없으니 무덤에 세우는 비석이나 청시(請諡)를 분수에 넘치게 찬양하지 말고 검박하게 하라”라고 유언하였다.
오윤겸의 유언에 따라 분묘 입구에는 신도비를 세우지 않았고, 묘 오른쪽에 묘갈만 세웠다. 1636년에 조성된 오윤겸의 묘는 본래 봉분 하단에 병풍석이 없는 봉토분이었으나, 1980년대 중반에 후손들이 보수하였다. 1987년 2월 12일 경기도 기념물 제10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오윤겸의 묘는 정경부인 경주이씨(慶州李氏)와 쌍분을 이루고 있으며, 봉분에 호석(護石)을 둘렀다. 양 봉분 사이 앞쪽 중앙에 상석이 놓여 있고 그 전면에 향안석이 놓여져 있으며, 상석 전방에는 동자석이 좌우에 갖추어져 있다. 동자석 전방에는 망주석, 양관조복형의 문관석이 좌우에 있다.
묘비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비좌는 측면에는 당초문이 조각되어 있고, 상부 모서리에는 복련(覆蓮)이 새겨져 있다. 비의 규모는 총 높이 292㎝, 비 높이 226㎝, 너비 70㎝, 두께 25㎝이다. 묘역은 200여 평으로 비교적 넓은 편이나 분묘의 치장은 간결하다. 화강암 재질로 된 묘의 비문은 마모가 심한 편이다.
[금석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