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거 성씨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008
한자 世居姓氏
영어공식명칭 A Family Name of Residing for Generations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김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념용어(일반)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고 있는 성씨.

[개설]

고려의 후삼국 통일 후, 940년(태조 23)경에 3가지 주요 정책이 실행되었다. 역분전(役分田)의 지급, 군현 개편, 토성(土姓)의 분정(分定)이 그것이다. 이들 정책은 궁극적으로 호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방을 통제하고 중앙집권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에게 성씨를 수여한 것은 호족들에게 그들의 출신지[본관]를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해주는 대신에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도록 한 정책이었다. 고려 이전 고대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는데, 고려 초 토성 분정을 통해 성씨가 지방 유력자에게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성씨는 토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확대되고, 분화, 이동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성과 변천]

우리나라의 성씨에 관한 최초의 구체적인 자료는 조선 세종 때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1425)와 『세종실록지리지』의 성씨 조항이다. 자료에는 함양군의 성씨 중에 토성(土姓)이 다섯으로 여(呂)·오(吳)·서(徐)·박(朴)·조(曺)씨, 속성(續姓)이 하나로 이(李)씨, 마천소(馬淺所)의 성씨로 조(曺)씨가 수록되어 있다. 지금의 안의면안음현의 성씨에 대해서는 이안(利安)의 성씨로 조(曺)·임(林)·김(金)·표(表)·하(河) 등의 다섯, 감음(減陰)의 성씨로 공(孔)·황(黃)·서문(西門)·서(徐) 등의 넷, 우봉(牛峯)에서 온 내성(來姓)으로 이(李), 갈산소(乫山所)의 성으로 고(高)·윤(尹)·박(朴)·안(安) 등의 넷, 망성(亡姓)으로 송(宋)씨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성씨는 고려 시대부터 함양 지역에 자리 잡았던 것으로, 조선 초까지 함양 지역에는 함양군에 여씨 등 7개 성씨가, 안음현에는 조(曺)씨 등 15개의 성씨가 분포되어 있었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성씨조에는 함양군의 성씨로 여(呂)·오(吳)·박(朴)·서(徐)·조(曺)와 속성(續姓) 이(李), 마천(馬淺)의 성 조(曺)씨를, 안음현의 성씨로 이안(利安)의 조(曺)·임(林)·하(河)·김(金)·표(表), 감음(感陰)의 공(孔)·황(黃)·서문(西門)·서(徐)·최(崔)·강(姜), 내성(來姓) 이(李), 갈산(乫山)의 고(高)·윤(尹)·박(朴)·안(安)·송(宋)씨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성씨의 내용은 『세종실록지리지』 성씨조의 내용과 동일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성씨조의 내용이 그대로라면, 『세종실록지리지』 성씨 통계 후 1세기가 경과한 시점에도 함양 지역에서는 성씨 분포에 변동이 없었던 것으로 된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 인물조에서는 유호인(俞好仁)이 이곳에 우거(寓居)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열녀 송씨의 남편이 정인(鄭寅)이었던 것을 보면 정씨가 세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음현의 경우도 효자로 반전(潘腆)과 조귀천(趙貴千)이 소개되고 있어, 이들 성씨가 안음현에 세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656년(효종 7)에 편찬된 함양군의 읍지 『천령지』에는 당시 함양군의 성씨와 함께 함양 출신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성씨조에 수록된 함양의 성씨는 본현에 여(呂)·오(吳)·서(徐)·박(朴)·조(曺), 속성(續姓) 이(李), 마천(馬淺)의 성 조(曺)씨를 소개하고 있어,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 성씨조의 수록 내용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여기에 수록된 함양 출신 인물 박충좌를 비롯한 87명[일반인 77, 열부 10]의 인물 성씨를 보면, 성씨조의 8개 성씨를 훨씬 웃도는 27개 성씨를 확인할 수 있다. 함양박씨·함양여씨·함양오씨·하동정씨·풍천노씨·기계유씨·함안조씨·초계정씨·보성선씨·진주강씨·나주박씨·신창표씨·여산송씨·경주정씨·안음성씨·나주임씨·성주도씨·청주한씨·남원양씨·은진임씨·연안이씨·진주하씨·함양조씨·거창신씨·삼척박씨·진주정씨·하양허씨 등이 이들이다. 이들 성씨 가운데 상당수는 조선 건국 후 다른 지역에서 함양으로 이동해온 성씨들이다.

『천령지』 편찬으로부터 1세기 정도 경과한 시기에 편찬된 전국 지리서인 『여지도서』[1757~1765]에서는 함양군의 성씨로, 이전의 성씨 여(呂)·오(吳)·박(朴)·서(徐)·조(曹)·이(李, 속성)·조(曺, 마천성) 등 7개 성씨 외에, 새로운 성씨로 정(鄭)·노(盧)·강(姜)·김(金)·양(梁)·최(崔)·하(河)·임(林)·권(權)·진(陳)·허(許)·우(禹)·신(愼)·유(柳)·유(兪)·표(表)·조(趙)·도(都)·선(宣)·경(慶)·남(南) 등 21개의 성씨를 수록하였다. 안의현의 성씨로는 이안(利安)의 조(曺)·임(林)·하(河)·김(金)·표(表) 5개의 성씨와 감음(感陰)의 공(孔)·황(黃)·서문(西門)·서(徐)·최(崔)·강(姜)·이(李)·고(高)·윤(尹)·박(朴)·안(安)·송(宋) 등의 12개 성씨를 소개하고, 안음현(安陰縣)으로 통합된 이후의 성씨로 이(李)·박(朴)·유(柳)·반(潘)·임(林)·정(鄭)·변(邊)·신(愼)·조(曹)·권(權)·오(吳)·조(趙)·강(姜)·윤(尹)·경(慶)·곽(郭)·전(全)·우(禹)·김(金)·문(文)·신(申)·송(宋)·성(成)·홍(洪)·온(溫) 등의 25개 성씨를 수록하였다.

1832년의 『경상도읍지』에 포함된 『함양군지』『안의현읍지』, 1871년의 『영남읍지』에 포함된 『함양부읍지』『안의읍지』의 성씨조와 인물조에서도 함양 지역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데, 내용은 『여지도서』의 것을 이어받고 있다. 다만 이안의 성씨였던 표(表)씨, 감음의 성씨였던 서문(西門)씨, 안음의 성씨였던 반(潘)씨에 대해서는 ‘금무(今無)’라 표기하고 있어, 이 3개의 성씨가 1871년에 『안의읍지』를 편찬할 당시에는 없어진 성씨로 소개하고 있다.

[세거 성씨 현황]

1934년에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의 성』에서는 당시 함양군 성씨의 수를 106개[본관 미분류]씨, 인구 1만 6,419명으로 집계하고, 15가구 이상 집성촌을 형성했던 성씨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당시 함양의 대표적인 세거성씨이다. 성씨별 집성촌의 수와 가구 수는 다음과 같다.

김해김씨[6, 177] 김녕김씨[2, 85] 선산김씨[1, 50] 경주김씨[2, 82] 안동김씨[1, 19] 정선전씨[2, 167] 밀양박씨[6, 220] 삼척박씨[3, 89] 죽산박씨[1, 39] 합천이씨[3, 89] 전주이씨[3, 56] 성주이씨[2, 81] 하동정씨[4, 116] 동래정씨[4, 96] 진양정씨[2, 43] 초계정씨[1, 39] 서산정씨[1, 36] 진주강씨[7, 203] 풍천노씨[4, 144] 진양하씨[2, 136] 하양허씨[2, 56] 경주최씨[1, 44] 탐진최씨[1, 34] 달성서씨[3, 144] 남원양씨[3, 62] 단양우씨[2, 32] 나주임씨[1, 40] 안동권씨[1, 60] 현풍곽씨[1, 25] 수원백씨[1, 25] 평산신씨[2, 35] 여산송씨[1, 28] 은진송씨[1, 35] 거창장씨[1, 42] 해주오씨[1, 41] 창녕조씨[1, 32] 청주한씨[1, 18]

1956년 함양향교에서 편찬한 『함양군지』와 1966년 안의향교에서 편찬한 『안의읍지』는 서술항목으로 성씨조를 설정하여 토성을 소개하는 한편, 함양 지역에 세거하였던 성씨의 입향 시기와 입향조, 거주지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다음 132개 성씨는 함양군의 세거 성씨라고 볼 수 있다.

김해김씨, 김녕김씨, 분성김씨, 선산김씨, 경주김씨, 광산김씨, 안동김씨, 선산김씨, 부안김씨, 상주김씨, 안산김씨, 단양우씨, 나주임씨, 은진임씨, 풍천노씨, 남원양씨, 보성선씨, 함안조씨, 경주이씨, 완산이씨, 전주이씨, 양성이씨, 성주이씨, 연안이씨, 합천이씨, 덕수이씨, 안산이씨, 강양이씨, 안악이씨, 인천이씨, 밀양박씨, 함양박씨, 죽산박씨, 순천박씨, 나주박씨, 삼척박씨, 무안박씨, 고령박씨, 하동정씨, 초계정씨, 경주정씨, 진양정씨, 서산정씨, 동래정씨, 연일정씨, 해주정씨, 신창표씨, 하양허씨, 김해허씨, 고령유씨, 기계유씨, 거창유씨, 강릉유씨, 함안윤씨, 파평윤씨, 함양오씨, 해주오씨, 창녕성씨, 화순최씨, 진주강씨, 여산송씨, 은진송씨, 여양진(陳)씨, 청주한씨, 성주도씨, 초계변(卞)씨, 진주하씨, 진주류씨, 문화류씨, 안동권씨, 창녕조씨, 거창신씨, 담양전씨, 남양홍씨, 울진임씨, 광산노씨, 남원양(楊)씨, 장흥마씨, 경주최씨, 삭녕최씨, 영양최씨, 탐진최씨, 달성서씨, 대구서씨, 이천서씨, 연안차씨, 영양천씨, 진양나씨, 신창맹씨, 제주고씨, 장흥고씨, 의령남씨, 인동장씨, 창녕장씨, 곡부공씨, 수원백씨, 남양갈씨, 분성배씨, 달성배씨, 성주배씨, 정선전씨, 천안전씨, 남평문씨, 광천동(董)씨, 충주석(石)씨, 현풍곽씨, 의령여씨, 평산신씨, 고령신씨, 나주나씨, 파주염씨, 청송심씨, 창원황씨, 여흥민씨, 능성구씨, 순흥안씨, 강화노씨, 남양방(房)씨, 남원진씨, 순창설씨, 군위방(方)씨, 청주경씨, 광동진씨, 충주지씨, 거제반씨, 장연변(邊)씨, 신안주(朱)씨, 곡산연씨, 행주기씨, 포산곽씨, 거창장(章)씨, 영월엄씨 등이 있다.

2000년도 통계청 성씨 본관별 가구 및 인구통계에 따르면 함양군에는 156개의 성과 1,375개의 본관이 있고, 1만 6,008가구에 4만1,943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중 30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는 김해김씨 등 77개 성씨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조사에서는 가구 수는 기록하지 않고 성씨별 인구수만 조사되었는데, 조사에서 당시 함양군 인구 3만 7,898명 가운데 5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모두 277개로 집계되었다. 이 중 7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김해김씨를 비롯해 82개 성씨 정도 확인되었다.

인구 규모라는 것이 세거성씨 여부를 좌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함양군의 토성이었던 함양여씨는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24가구 58명, 2015년 조사에서는 51명이었다. 함양여씨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지만 함양의 세거성씨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신창표씨는 조선 세종 때부터 입향한 성씨인데, 2000년 조사에서는 20가구 40명, 2015년 조사에서는 58명이었다. 보성선씨는 고려 충숙왕 때부터 함양군에 입향하였는데, 2000년 조사에서는 11가구 20명, 2015년에는 22명이 함양군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구수가 적지만, 신창표씨나 보성선씨를 세거 성씨 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1956년 간행된 『함양군지』에서 함양 입향 사례가 확인되는 132개 성씨 모두가 함양군의 세거 성씨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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