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729
한자 安東權氏
영어공식명칭 Andong Gweo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조선 전기 - 안동권씨, 권세경 함양에 입향
본관 안동 - 경상북도 안동시
입향지 우항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도천마을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기동마을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임호마을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도북마을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도북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내산마을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권행
입향 시조 권세경 등

[정의]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세경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연원]

안동권씨 시조인 권행(權幸)은 930년(태조 13) 왕건의 고려군이 견훤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키고 식읍(食邑)[왕족, 공신, 대신에게 공로에 대한 특별 보상으로 주던 영지(領地). 식봉(食封)]으로 내림과 동시에 ‘권씨(權氏)’ 성을 내린 것이 안동권씨의 시작이다. 시조 권행 이후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는 권인행(權仁幸)-권책(權冊)-권균한(權均漢)-권자팽(權子彭)-권선개(權先蓋)-권염(權廉)-권이여(權利輿)로 이어지면서 호장을 지내다가 권이여가 권중시(權仲時), 권취의(權就宜), 권통(權通) 등 세 아들을 둠으로써 가계가 분화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후기 안동권씨는 30여 명의 관료를 배출하면서 문벌로 성장하였다. 이것을 주도한 가계는 부호장(副戶長) 권중시의 후손들이다. 권중시는 권수평(權守平)[?~1250], 권차평(權次平), 권성원(權性源), 권수홍(權守洪)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이 가운데 권수평의 가계와 권수홍의 가계가 관료를 배출하면서 사족 가문이 되었고, 다른 가계들은 본관지의 재지이족(在地吏族)으로 남아 있었다.

권수평은 고종 때 추밀원부사를 지냈고, 권수평의 아들 권위(權韙)는 한림학사를 지냈으며, 손자 권단(權㫜)[1228~1311]은 충렬왕 때에 찬성사를 역임함으로서 이 시기에 와서 문벌인 세족(世族) 가문이 되었다. 이 가계는 권단의 아들 권부(權溥)[1262~1346]가 충숙왕 때 수상직인 첨의정승에 오름으로써 가세를 더욱 신장시킬 수 있었다. 이후에도 고려 말까지 20여 명의 고위 관료를 배출하면서 고려 후기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였다. 권수홍의 가계도 아들 권자여(權子輿)가 검교대호군(檢校大護軍)이 되고 권책(權頉)[평리], 권한공(權漢功)[정승, ?~1349], 권중달(權仲達)[밀직], 권중화(權仲和)[찬성사, 1322~1408]로 이어지면서 문벌가문 가계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안동권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문과 합격자를 400명 가까이 배출할 정도로 위상에 변함이 없었다.

[입향 경위]

안동권씨의 함양 입향은 다른 성씨에 비하여 다소 늦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조선 중종 때 권세경(權世經)이 함양으로 들어와 우항(牛項)[병곡면 도천리 도천마을]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권세경은 부사를 지낸 권우린(權遇麟)의 아들이고, 고은 이지활의 손자인 송계(松溪) 이지번(李之蕃)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선조 때는 직장(直長) 권극의(權克義)[1525~?]가 안음현에서 들어와 그 자손들이 도북(道北)[수동면 도북리 도북마을]에 자리잡았고, 숙종 때는 장령 권유(權愈)[1633~1704]의 후손 권시진(權時進)이 산청에서 들어와 그 자손들이 백천(白川)[함양읍 백천리 일대]에 정착하였다. 영조 때는 권수룡(權壽龍)의 아들 권초(權䎐)가 단성(丹城)[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에서 들어와 교동(校洞)[함양읍 교산리 원교마을]에 거주하였고 같은 시기 충강공 권도(權濤)[1575~1644]의 후손 권현(權炫)도 단성에서 들어와 그 자손들이 대광(大廣)[병곡면 광평리 대광마을]에 자리잡았다.

안동권씨의 함양 입향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권도의 후손 우산(愚山) 권병원(權秉元)이 철종 때 단성에서 들어와 난평(蘭坪)[함양읍 난평리]에서 살았고, 고종 때는 상암(霜嵒) 권준(權濬)[1578~?]의 후손 권태환(權泰煥)[1872~1946]과 권재하(權載河)가 단성에서 들어와 그 자손들이 각각 동호(桐湖)[휴천면 남호리 동호마을]와 서주(西洲)[유림면 서주리 서주마을]로 이주하였다. 장령 권유의 후손 권종하(權鍾夏)[1855~?]와 평해군수 권헌문(權憲文)[1885~1953]의 손자 권경용(權敬容)도 고종 때 산청에서 들어와 각각 태관(台官)[휴천면 태관리]과 개평(介坪)[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 자리 잡았다.

[현황]

1934년에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의 성』에서 함양군의 안동권씨는 수동면 도북리에 60세대 규모의 집성촌을 형성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2000년의 통계청 인구 총조사에서 안동김씨 인구는 전국에 19만 6,566가구 62만 9,291명, 함양군은 249가구 653명으로 집계되었다. 2015년의 인구조사에는 전국에 69만 6,317명, 함양군이 610명이었다. 2000년에 비해 안동권씨의 전국 인구는 7만 명 가까이 증가하였지만 함양군의 인구는 40여 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함양군 전체 인구가 2000년 조사에서 4만 1,869명, 2015년 조사에서 3만 7,898명으로 10% 정도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안동권씨 인구의 감소 폭은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안동권씨와 연고가 있었거나 많이 사는 곳은 함양읍 신관리 기동마을, 휴천면 호산리 임호마을, 수동면 도북리 도북마을죽산리 내산마을 등지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7.10 내용 수정 권세경은 부사를 지낸 권우린(權遇麟)의 아들이고, 천문·지리에 능통하였다고 하는 한산이씨 이지번(李之蕃)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 권세경은 부사를 지낸 권우린(權遇麟)의 아들이고, 고은 이지활의 손자인 송계(松溪) 이지번(李之蕃)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이용자 의견
김** 천문·지리에 능통하였다고 하는 한산이씨 이지번(李之蕃)의->충신 고은 이지활의 손자인 성주이씨 송계(松溪) 이지번(李之蕃, 1469~1522)의

*咸陽郡誌 / 姓氏
○權世經 安東人府使遇麟子中宗朝爲賢李之蕃外孫居牛項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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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함양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내용 수정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02.12
김** 咸陽郡誌 / 新增 儒賢

李之蕃 號松溪忠智活孫,專意聖賢之書,
  • 답변
  • 디지털함양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내용 수정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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