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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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상남도 함양군은 고려시대에 함성군(含城郡)이라고도 불렸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속함군(速含郡)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의 관제 개편 때 천령군(天嶺郡)으로 개칭하고, 운봉현(雲峰縣)과 이안현의 두 고을을 영현(領縣)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경상남도 함양군과 이안현으로 구성된 고려시대 함양 지역은 오늘날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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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우현을 시조로 하고 우각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단양우씨(丹陽禹氏)는 고려시대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낸 우현(禹玄)을 시조로 하여 우신(禹臣)-우인가(禹仁可)-우잉순(禹仍順)-우경절(禹慶節)-우중대(禹仲大) 등 외줄로 이어져 오다가 6세 우중대가 우천규(禹天珪), 우천계(禹天啓), 우천석(禹天錫), 우천우(禹天佑), 우천성(禹天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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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상백마을의 이름을 따서 상백리로 개설되었다. 상백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함양군 백토면 백평(웃잣들)마을을 상백리라 개칭하고 함양군 수동면에 편입되었다. 상백리는 함양군 안의면과의 경계지역으로 고분군이 발견되고 유물이 많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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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고 있는 성씨. 고려의 후삼국 통일 후, 940년(태조 23)경에 3가지 주요 정책이 실행되었다. 역분전(役分田)의 지급, 군현 개편, 토성(土姓)의 분정(分定)이 그것이다. 이들 정책은 궁극적으로 호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방을 통제하고 중앙집권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에게 성씨를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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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에 있는 함양여씨 입향조의 묘소.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 임호마을의 입구에 있다. 재실 뒤로는 시조 여어매(呂御梅)의 무덤이 있고, 그 아래에 아들인 여임청(呂林淸)의 무덤이 있다. 이곳은 휴천면 소재지에서 휴천우체국을 지나 삼거리에서 임호길을 따라 가면 곧 도착한다. 여임청은 함양여씨(咸陽呂氏) 시조인 여어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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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군수로 활동한 문신. 여충보(呂忠輔)의 자는 정양(貞亮)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여종숙(呂宗肅),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남정(楠亭) 이견기(李堅基)[1384~1455]의 딸이다. 3남 1녀 가운데 둘째아들이다. 아내 재령강씨(載寧康氏)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여윤귀(呂允龜), 여윤수(呂允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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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에서 같은 성씨가 오랜 기간 하나의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지역.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부계 혈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서 ‘동성마을’, ‘동족촌’, ‘동족집단’, ‘동족부락’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우리나라 전통 농경 사회에서 생성된 촌락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고려 시대 혹은 고대까지 올려 잡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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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을 본관으로 하고 여어매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 함양여씨(咸陽呂氏)의 시조는 중국 내주(萊州) 사람인 여어매(呂御梅)로,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역임한 여어매는 황소의 난을 피하여 877년(헌강왕 3) 신라에 귀화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여어매는 여임청(呂林淸)과 여광유(呂光有) 두 아들을 두었다. 여임청의 후손인 여자장(呂子章), 여존혁(呂存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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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는 산두동(山斗洞), 임호동(林湖洞), 신기동(新基洞)마을을 병합하면서 ‘임호’와 ‘산두’의 이름을 따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라 하였다. 산두마을은 마을 뒷동산이 말 두(斗)와 같이 생겨 지어진 지명이다. 산두마을에 전해 오는 설화에 따르면 조선 선조 때 정옥(鄭沃)이라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