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읍지
-
183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의 지도.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에 수록되어 있다. 1장 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의현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서상면 전체, 수도면의 진목리·춘전리, 거창군 마리면·북상면·위천면에 걸쳐 있었다. 지도의 아래쪽은 경상남도 거창군[현재의 경상남도 산청군 일대] 및 함양, 위쪽은 전라도계와...
-
1832년 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함양군 향토지. 세로 35㎝, 가로 22.6㎝의 필사본이다. 표지는 능화문황지(菱花紋黃紙), 본문은 저지(楮紙)가 각각 사용되었다. 채색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는 1832년경에 편찬된 경상도 도지(道誌)로, 필사본이다. 20책으로 되어 있다. 각 고을 읍지마다 맨...
-
183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되어 있는 경상남도 함양군 지도.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7책 「함양군읍지(咸陽郡邑誌)」에 수록되어 있다. 1장 2면의 지도이다. 지도 속 함양군은 안의면·서상면·서하면을 제외한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걸쳐 있었다. 본 지도는 현재 함양군 함양읍 시내에 있었던 함양읍성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안의·산청계와 경계를 이루며, 왼쪽...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1684년의 사적기에서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이 군자사에 머물며 태자를 낳았고, 이후 환도하면서 머물던 곳을 사찰로 만들어 ‘군자사’라는 사명(寺名)을 지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 불일(佛日)국사가 이곳을 중창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진각(眞覺)국사가 이곳에 중창하였다. 이후 다시 흥폐하다가 1317년(충숙왕 4)에 혜...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고 있는 성씨. 고려의 후삼국 통일 후, 940년(태조 23)경에 3가지 주요 정책이 실행되었다. 역분전(役分田)의 지급, 군현 개편, 토성(土姓)의 분정(分定)이 그것이다. 이들 정책은 궁극적으로 호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방을 통제하고 중앙집권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에게 성씨를 수여...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의 괘관산에 있는 절터. 안정사 터의 창건이나 폐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다만 『여지도서(輿地圖書)』·『범우고(梵宇攷)』에 ‘천왕점(天王岾)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영남읍지(嶺南邑誌)』에는 ‘안정암(安靜庵)’으로 표기되어 있다. 1942년에 발간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목숨을 바쳐 자신의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과 시댁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바친 부녀자. 위기 상황에서 죽음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고난 속에서도 오랜 세월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주로 일컫는 말이며 넓게는 남편과 시가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을 말한다. 열부(烈婦)와 절부(節婦)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같은 의미로 쓰인다. 조선은 초기부터 이른바 정표정...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8책에 수록된 안의현 향토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전국 읍지 편찬 사업에 의하여 편찬·상송된 경상도의 각 읍지(邑誌)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영남읍지』 8책의 안의현읍지는 먼저 1장 2면의 안의현 지도가 있고, 내제에 이어 안의현의 옛 이름인 안...
-
1871년에 편찬한 『영남읍지(嶺南邑誌)』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의 지도. 1장 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의 아래쪽은 경상남도 거창, 함양계가 경계를 이루고 위쪽은 전라도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전 시기 지도와 마찬가지로 읍치를 왼쪽 하단에 위치시키고 있다. 위천과 남강과 같은 군내 주요 수계를 중심으로 산계를 간단하게 표시하였다. 향교, 창고, 사찰 및 암자 그리...
-
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된 향토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71년(고종 3) 전국 읍지 편찬 사업에 의하여 편찬·상송된 경상도의 각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함양부읍지」는 『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되어 있다. 1871년에는 함양군이었음에도 읍지 제목은 「함양부읍지」로 되어...
-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지도. 1871년 『영남읍지(嶺南邑誌)』 11책의 「함양부읍지」에 수록된 지도로, 1장 2면의 흑백지도이다. 당시 함양부는 지금의 안의면·서상면·서하면을 제외한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걸쳐 있었다. 지도에서는 현재의 남강 본류가 오른쪽 위의 남계(濫溪) 방향에서 흘러 들어와 도현(桃峴)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읍성 아래쪽의...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에서 거창으로 이어진 역로에 있던 역참. 경상남도 함양군과 경상남도 거창군의 왕래에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1438년 4월에 설치되었다. 임수역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438년(세종 20년) 4월 9일 기사에서 “안음(安陰)에 신설한 역은 임수(臨水)라 일컫고[安陰新驛稱臨水]”라고 처음 확인된다. 이후 『신증동국...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어버이에게 효를 다한 자녀. 효자는 살아 계신 부모를 지극히 모시는 자식을 말하며, 돌아가신 후에 장례나 제사를 극진히 모시는 것도 포함한다. 전통 시대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 효자는 『경상도읍지』에 함양 33명, 안의 18명 등 총 51명이 확인된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읍지 『천령지(天嶺誌)』에 효자 17명,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2명이 기록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