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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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重昌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nyeo for Gim Jungcha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숙진1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춘진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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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99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숙진1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숙진1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중창의 정려.
[개설]
김중창(1619~1684)은 본관이 광산이다. 광산김씨로 부원군 김국광의 7세손이며, 충곡서원에 배향된 김정망의 아들이다. 1654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김중창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대변을 맛보면서 병세를 짐작하였고 단지(斷指)하여 피를 내어 들게 했으며 한겨울에 잉어를 잡아 봉양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효성이 알려져 그가 죽은 후 13년 만에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위치]
김중창 정려는 상월면사무소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1.5㎞를 가면 도로의 동측에 노성천을 건너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3.3㎞쯤 가면 도로 서쪽 숙진1리 반송마을로 들어가는 어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250m 거리의 야산 남동쪽 비탈면에 있다.
[형태]
김중창 정려는 정면과 측면 각각 1칸 건물이다. 바닥을 화강암으로 깨끗이 정지한 후 낮은 8각 주초석(柱礎石)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전후좌우 사면을 홍살로 둘렀다. 정려각 주변에 낮은 돌담을 설치하여 깨끗하게 정비해 놓았다.
명정 현판에는 ‘효자성균생원김중창지문숭정기원후육십이년기묘십일월명사정려(孝子成均生員金重昌之門崇禎紀元後六十二年己卯十日月命賜旌閭)’라고 하여 숙종 기묘년(1699)에 명정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예조 효행등재에는 정축년 즉 1697년(숙종 23) 7월 생원 김중창이 효자정려질(孝子旌閭秩)에 올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 측면에 걸린 중수기에 의하면, 정려 건립은 명정 후 10여 년이 지난 임진년(1712, 숙종 38) 7월에 이루어졌고, 이후 1968년에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광산김씨는 연산면 고정리 등에서 경제적 기반을 다지고 누대에 걸쳐 과거 급제자를 배출함으로써 논산 지역의 유력 성씨로 성장하였다. 정려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 사족이나 유생들 사이에서 당위성이 공론화되어야만 했다는 점에서 김중창의 정려는 광산김씨의 활발했던 사족 활동과 함께 지역 사회에서 광산김씨 집안의 위상이 대단했음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