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254
한자 六十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기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12월 15일 - 「육십령」, 『우리고장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육십령 고개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사이지도보기
성격 지명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산적|경상도 사내|전라도 규수
모티프 유형 망부석 설화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있는 육십령 고개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문화원에서 1994년에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02쪽과,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2012년에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92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고개의 이름이 ‘육십령’이 된 데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는 영(嶺)마루가 경상남도 안의 감영과 전라북도 장수 감영에서 각각 육십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육십령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두번째는 이 고개에는 크고 작은 육십개의 고개가 있어 육십령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세번째는 산적과 관련한 전설이다. 옛날 이 고개에는 산적들이 많아 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개를 넘기 위하여 고개 아래 주막에서 머물면서 60명의 사람을 모아 함께 넘어 육십령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육십령에는 슬픈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경상도 사내가 전라도 규수에게 장가들어 살았는데,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에 육십령을 넘다가 산적들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육십령을 바라보는 곳에서 망부석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모티프 분석]

「육십령」은 고개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개 이름에 대한 설화는 다양하기도 하지만 전국적으로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옛날에는 험한 길과 산짐승, 도적들의 위협으로 인해 고개를 넘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었으므로 이와 관련한 고개 이름이 지어지기도 했다. ‘육십령’ 또한 워낙 험해 60명이 모여야만 넘을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에 해당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도 ‘천(千)고개’와 관련한 설화가 있는데, 1,000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는 의미로 ‘육십령’의 설화 내용과 유사하다. 또한 육십령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계내면에서 각각 육십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지금도 거창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남도 북부지역과 전라북도 진안군을 거쳐 전라북도 전주시에 이르는 전라북도 동부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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