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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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속한 법정리. 개평리는 마을 지형이 개(介)자 모양으로 형성되어 개화대 혹은 갯들이라 불리었다. 오라대(梧坪)마을과 개화대(介坪)마을을 합쳐 개오대마을이라고도 한다. 본래 경상남도 함양군 덕곡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편입되어 개평리라 하였다. 14세기 하동정씨와 경주김씨가 들어와 살았고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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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의 고택을 통해 살펴본 조선 시대 선비들의 주거 문화와 변천.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2개의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형성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낄 개(介)’자의 형상을 보이는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14세기 경주김씨와 하동정씨가 이주하면서 마을이 처음으로 형성되었고, 이후 15세기에 풍천노씨가 들어와 살면서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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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유학자 이육의 시문집. 이육(李㻙)[1827~1898]의 자는 진화(振和), 호는 곡은(谷隱)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부호군 이성일(李成一)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 노광석(盧光碩)의 딸이다. 이육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용전(龍田) 송내희(宋來熙)에게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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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터를 잡은 풍천노씨 입향조이자 문신. 노숙동(盧叔仝)[1430~1463]의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30년 3월 임인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확목리 화목마을에서 3남 3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승사랑(承仕郞) 용구현령(龍駒縣令) 노천계(盧天桂)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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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풍천노씨 삼인의 정려. 함양군 지곡면 오평마을과 덕암마을의 중간지점인 함양로 변에 있다. 노진(盧禛)은 효성이 지극하여 1585년(선조 18)에 정려가 내려지고 1723년(경종 3)에 정려비가 세워졌다. 노진의 정려는 처음에는 지곡면 창촌 동편에 있었으며 이후에 개평리 오평으로 이건하였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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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풍천노씨 삼인의 정려. 함양군 지곡면 오평마을과 덕암마을의 중간지점인 함양로 변에 있다. 노진(盧禛)은 효성이 지극하여 1585년(선조 18)에 정려가 내려지고 1723년(경종 3)에 정려비가 세워졌다. 노진의 정려는 처음에는 지곡면 창촌 동편에 있었으며 이후에 개평리 오평으로 이건하였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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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건립된 조선 후기 서원. 도곡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있는 유림들이 함양 출신 명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창건 초기에는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자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사람인 조승숙(趙承肅)[1357~1417],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정복주(鄭復周)[1367~?],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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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건립된 조선 후기 서원. 도곡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있는 유림들이 함양 출신 명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창건 초기에는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자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사람인 조승숙(趙承肅)[1357~1417],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정복주(鄭復周)[1367~?],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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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사당.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개평마을의 서쪽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개평마을 외곽으로 흐르는 평촌천을 가로지는 동산교를 건너 나지막한 언덕길 중턱에 있다. 1925년 풍천노씨 문중의 두 선현인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과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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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태어난 물재 노광리의 문집.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를 모방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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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난 백초 노형하의 시문집. 노형하(盧亨夏)[1620~1654]의 자는 장경(長卿), 호는 백초(白草)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효공(文孝公)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이다. 7세 때 부친상을 당하고 어머니의 고향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거하였다. 1646년(인조 24)에 진사에 합격하고 1648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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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관의 문집. 노관(盧祼)[1522~1574]의 자는 자장(子將), 호는 사암(徙庵)·상재(尙齋)·앙사(仰思)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노우명(盧友明)[1471~1523]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시민(權時敏)[1464~1523]의 딸이다.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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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일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설 유교 중등 교육기관. 『여지도서』에 의하면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는 남계서원(蘫溪書院)·당주서원(溏洲書院)·백연서원(栢淵書院)·도곡서원(道谷書院)·구천서원(龜川書院) 등 5곳이 있었고, 안의 지역에는 용문서원(龍門書院)·황암사우(黃巖祠宇)·성천서원(星川書院)·역천향사(嶧川鄕祠)·구연향사(龜淵鄕祠) 등 5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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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고 있는 성씨. 고려의 후삼국 통일 후, 940년(태조 23)경에 3가지 주요 정책이 실행되었다. 역분전(役分田)의 지급, 군현 개편, 토성(土姓)의 분정(分定)이 그것이다. 이들 정책은 궁극적으로 호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방을 통제하고 중앙집권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에게 성씨를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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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송재 노숙동의 문집.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고 1436년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집현전 교리, 예문관 직제학,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세조 때 청백리에 녹선(錄選)[추천되어 뽑힘]되었으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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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우명의 문집. 노우명(盧友明)[1471~1523]의 자는 군량(君亮), 호는 신고당(信古堂)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노분(盧昐)이다.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로, 신선경(愼先庚)의 딸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에게 수학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만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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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에 속한 법정리. 옥매리는 옥동(玉洞)과 매촌(梅村)의 첫 글자를 따서 붙여진 지명이다. 옥동은 옥은동(玉隱洞)이라 하며 이 마을에 옥이 숨겨져 있으므로 열심히 땅을 파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매촌마을은 마을 뒷산의 지형이 매화낙지(梅花落枝)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는 설이 있으며, 마을을 개척할 때 뒷산을 개간하여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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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박문영의 문집. 박문영(朴文楧)[1570~1623]의 자는 군수(君秀), 호는 용호(龍湖)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아버지는 형조참판에 추증된 박행(朴荇)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사상(盧士祥)의 딸이다. 경상도 산음현 효촌(曉村)[지금의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에서 태어났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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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사상의 문집. 노사상(盧士尙)[1559~1598]의 자는 지부(志夫), 호는 우계(迂溪)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을 지낸 노관(盧祼)이다. 어머니는 신창표씨(新昌表氏)로, 표곤운(表晜雲)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오평(梧坪)[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거주하였다. 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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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주이씨 삼의사의 정려비. 이숙·이진·이한필 정려비는 1728년(영조 4)에 발생한 이인좌의 난 때 의병으로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이숙(李橚), 이진(李榗), 이한필(李漢弼)의 충절을 기려 나라에서 세운 것이다. 이지활의 9세손인 이숙과 이진은 형제이고, 이한필은 이숙의 아들이다. 이인좌의 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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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주이씨 삼의사의 정려비. 이숙·이진·이한필 정려비는 1728년(영조 4)에 발생한 이인좌의 난 때 의병으로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이숙(李橚), 이진(李榗), 이한필(李漢弼)의 충절을 기려 나라에서 세운 것이다. 이지활의 9세손인 이숙과 이진은 형제이고, 이한필은 이숙의 아들이다. 이인좌의 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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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에 건립된 정현의의 정려.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 산146-1번지에 있다. 북쪽에는 산두마을이, 남쪽에는 긴 구릉이 펼쳐지는데 정려각은 구릉말단부와 함양남서로가 접하는 곳에 있다. 이곳은 휴천면 소재지에서 함양남서로를 따라 1.2㎞쯤 가면 된다. 정현의(鄭鉉毅)는 해주사람으로 20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3년상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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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상의 문집. 노상(盧祥)의 자는 경휴(景休), 호는 졸재(拙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영경전참봉(永慶殿參奉)을 지낸 노우영(盧友英)[1471~1551]이다. 어머니는 진양정씨(晉陽鄭氏)로, 정윤창(鄭尹昌)의 딸이다. 두계(杜溪) 서암(西巖)에 은거하며 학문에 힘썼다. ‘졸렬함으로써 뜻을 고상히 한다’[졸이상지(拙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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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학자 임만희의 문집. 임만희(林晩熙)[1872~1933]의 자는 백여(栢汝), 호는 종와(鍾窩)이다.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아버지는 임수명(林秀明)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인 노한수(盧漢壽)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갈계리[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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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이규한의 문집. 이규한(李圭翰)[1866~1927]의 자는 붕거(鵬擧), 호는 죽헌(竹軒)이다. 본관은 월성(月城)이다. 아버지는 이시영(李始榮)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광중(盧光中)의 딸이다. 외가인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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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에서 같은 성씨가 오랜 기간 하나의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지역.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부계 혈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서 ‘동성마을’, ‘동족촌’, ‘동족집단’, ‘동족부락’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우리나라 전통 농경 사회에서 생성된 촌락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고려 시대 혹은 고대까지 올려 잡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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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하원순의 문집. 하원순(河元淳)[1858~1924]의 자는 치경(致敬), 호는 청봉(晴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하석간(河錫幹)이다. 어머니는 재취부인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광우(盧光禹)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마을[당시 우동(愚洞)]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남원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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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서 후기에 걸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주의 문집. 노주(盧冑)[1557~1617]의 자는 경승(景承), 호는 풍고(風皐)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형조참판에 추증된 노사준(盧士俊)이다.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로, 임각(林珏)의 딸이다. 작은할아버지 노진(盧禛)[1518~1578]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588년(선조 2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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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노수를 시조, 노숙동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풍천노씨의 본관 풍천(豊川)은 황해도에 있은 옛 지명이다. 고구려 때는 구을현(仇乙縣) 또는 굴천(屈遷)이었다. 757년(경덕왕 16) 굴현현(屈峴縣)으로 개칭하고 양악군(楊岳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이름을 바꾸고 995년(성종 14)에 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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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노수를 시조, 노숙동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풍천노씨의 본관 풍천(豊川)은 황해도에 있은 옛 지명이다. 고구려 때는 구을현(仇乙縣) 또는 굴천(屈遷)이었다. 757년(경덕왕 16) 굴현현(屈峴縣)으로 개칭하고 양악군(楊岳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이름을 바꾸고 995년(성종 14)에 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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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함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풍천노씨 가학십도」의 책판이다. 총 수량은 19매 38장이다. 풍천노씨가학도서(豊川盧氏家學圖序)는 총 3매 6장으로, 1847년에 홍직필(洪直弼)과 노광리(盧光履)가 지은 서문이 제5장까지로 되어 있다. 제6장은 가학십도의 의미를 4언 4구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의 풍천노씨 가학십도는 총 14매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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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 세거한 풍천노씨 가문에서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모아 정리한 문집. 노광리(盧光履), 노광두(盧光斗)[1772~1859] 등이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1848년에 간행하였다. 『풍천노씨가학십도(豊川盧氏家學十圖)』는 1책[37장]의 목판본으로, 전체 크기는 32.2×21.5㎝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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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 주곡마을의 풍천노씨 집안 54명이 남긴 유문을 모아 간행한 단행본. 노윤(盧昀) 등 54명이다. 1904년 10월에 후손 노정현(盧正鉉)이 족종형(族從兄)[항렬이 같은 겨레붙이 사이에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노탁현(盧卓鉉)과 함께 졸존재(拙存齋) 노분(盧昐)[1437~1478] 이하 7세까지의 유문을 수집하고 편차하여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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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한문으로 이루어진 학문 및 문학 전반을 일컫는 말.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문학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의 고운 최치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최치원은 당시 천령군수로 부임하여 상림(上林)을 조성하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고, 그가 자주 오르내리던 관아 옆 누각을 후인들이 학사루(學士樓)라 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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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조선 초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한문으로 지어진 시.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시는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앞선 통일신라 시대 최치원과 고려 시대 박충좌(朴忠佐) 등의 인물이 배출되었으나 함양과 관련한 그들의 한시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말선초의 조승숙(趙承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몇몇 시구가 그의 작품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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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소나무 군락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상록침엽수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는 14세기 경주김씨와 하동정씨가 이곳에 거주하면서 형성되었고, 15세기에 풍천노씨가 이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소나무 군락지는 마을 서편으로부터 덮쳐 오는 나쁜 기운을 차단하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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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풍천노씨의 대종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의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 천왕봉의 동쪽 산록 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함양 일두고택이 있고, 그 동쪽에 풍천노씨 대종가가 있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개평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중앙교가 있고, 중앙교에서 서쪽으로 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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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풍천노씨의 대종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남강 상류의 덕암천과 평촌천의 합류지점, 천왕봉의 동쪽 산록 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함양 일두고택이 있고, 그 동쪽에 풍천노씨 대종가가 있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개평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중앙교가 있고, 중앙교에서 서쪽으로 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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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고택.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는 1880년에 건립된 주택으로 풍천노씨가 처음 지었으나 최근에 하동정씨 종가에 매매되어 하동정씨 고가가 되었다. 남강 상류 우안의 덕암천과 평촌천 합류지점에 있고 천왕봉의 동쪽 사면 산록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함양 일두 고택의 서쪽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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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고택.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는 1880년에 건립된 주택으로 풍천노씨가 처음 지었으나 최근에 하동정씨 종가에 매매되어 하동정씨 고가가 되었다. 남강 상류 우안의 덕암천과 평촌천 합류지점에 있고 천왕봉의 동쪽 사면 산록경사지에 있다. 개평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함양 일두 고택의 서쪽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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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민재남의 문집. 민재남(閔在南)[1802~1873]의 초명은 수일(壽一), 자는 겸오(謙吾), 호는 회정·청천(聽天)·자소옹(自笑翁)·명곡주인(明谷主人)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감찰에 추증된 민이환(閔以瓛)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능(盧稜)의 딸이다. 외가인 함양에서 태어났다. 1867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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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어버이에게 효를 다한 자녀. 효자는 살아 계신 부모를 지극히 모시는 자식을 말하며, 돌아가신 후에 장례나 제사를 극진히 모시는 것도 포함한다. 전통 시대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 효자는 『경상도읍지』에 함양 33명, 안의 18명 등 총 51명이 확인된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읍지 『천령지(天嶺誌)』에 효자 17명,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2명이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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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승의 문집. 노승(盧勝)[1572~1607]의 자는 이복(而復), 호는 휴휴자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별좌(別座)를 지낸 운고(雲皐) 노사훈(盧士訓)이다. 어머니는 함안조씨로, 조언(趙堰)의 딸이다. 학행(學行)[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사람]으로 천거되어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제수되고,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