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노씨가학십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679
한자 豊川盧氏家學十圖
영어공식명칭 Pungcheonrohssigahaksipdo
이칭/별칭 『가학도』,『가학십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공광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48년연표보기 - 『풍천노씨가학십도』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문집
편자 노광리|노광두
간행자 목판본
권책 1책[37장]
행자 10행 20자
규격 32.2×21.5㎝
어미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
권수제 풍천노씨가학십도
판심제 가학도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세거한 풍천노씨 가문에서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모아 정리한 문집.

[편찬/간행 경위]

노광리(盧光履), 노광두(盧光斗)[1772~1859] 등이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1848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풍천노씨가학십도(豊川盧氏家學十圖)』는 1책[37장]의 목판본으로, 전체 크기는 32.2×21.5㎝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郭)은 21.5×17.3㎝이고, 행마다 경계가 있다. 10행 20자이고,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서문은 1847년 홍직필(洪直弼)[1776~1852], 정홍경(鄭鴻慶)[1768~?], 최황(崔璜)[1783~1874], 노광리가 지었다. 발문은 노석장(盧錫璋)과 노광두가 1846년과 1847년에 각각 지었다. 목차 없이 곧바로 14편의 도설(圖說)[그림을 곁들여서 설명함]과 그에 관한 글을 수록하고 있다. 노숙동(盧叔仝)[1403~1463]을 비롯하여 노분(盧昐), 노우명(盧友明)[1471~1523], 노상(盧祥), 노진(盧禛)[1518~1578], 노관(盧祼), 노사예(盧士豫)[1538~1594], 노사상(盧士尙)[1559~1598], 노사계(盧士戒), 노사회(盧士誨), 노건(盧腱), 노주(盧冑)[1557~1617], 노형운(盧亨雲), 노형필(盧亨弼), 노홍기(盧弘器)[1589~1647], 노형발(盧亨發) 등에 이르기까지 16명의 인물이 남긴 교훈을 도설로 요약하여 드러내보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가학십도』 판본 2종이 더 전하여진다. 〈古1360-20〉본에는 발문 뒤에 「방의성도(防意城圖)」, 「신명사도(神命舍圖)」 등 2편의 도설이 추가되어 있다. 〈奎 11484〉본에는 정홍경과 노광리의 서문이 빠져 있으며, 「방의성도」와 「신명사도」 또한 없다.

[의의와 평가]

『풍천노씨가학십도』는 선조의 모습을 드러내어 후손들이 본받고 실천하여야 할 조항을 세분화하여서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풍천노씨 가문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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