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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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유학자. 강익(姜翼, 1523~1567)은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孝友村)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현감을 지낸 강이경(姜利敬), 조부는 현감을 지낸 강한(姜漢)[1454~?], 부친은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강근우(姜謹友)이다. 모친은 남원양씨(南原梁氏)이다.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 또는 송암(松庵)이다. 강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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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남계서원에서 개암 강익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조선 후기 목판. 강익(姜翼)[1523~1567]의 자는 중보(仲輔)이고, 호는 개암·송암(松菴)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1549년(명종 4)에 진사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15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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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수 김종직이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 일대의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행문. 김종직(金宗直)이 경상남도 함양의 군수였던 1472년(성종 3) 8월 14~18일간 ‘함양관아-엄천-하봉-중봉-천왕봉-통천문-제석봉-영신사-백무동-마천-함양관아’로 귀가하기까지의 기행 내용이다. ‘인걸지령(人傑地靈)’. 빼어난 인물은 땅의 신령스러운 정기(精氣)를 받고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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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서평촌 출신인 남계 임희무의 문집. 임희무(林希茂)[1527~1577]의 자는 언실(彦實), 호는 남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평촌(黍坪村)[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 출신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사사하고,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 등과 교유하였다. 1552년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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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당곡 정희보의 문집.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이다. 본관은 진양이다. 정희보의 선조는 남해현 사람이며, 정희보부터 함양에 이사하여 살았다. 만년에는 후진 양성을 소임으로 여겨 노진(盧禛)[1518~1578], 이후백(李後白)[1520~1578], 양희(梁喜)[1515~1580], 강익(姜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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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함양군수를 지낸 조종도의 문집. 조종도(趙宗道)[1537~1597]의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어려서 동산옹(東山翁) 정두(鄭斗)의 문하에 있었으며,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에게 배웠다. 1558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유성룡(柳成龍)[1542~1607]·김성일(金誠一)[15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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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매암 조식의 문집. 조식(曺湜)[1526~1572]의 자는 유청(幼淸), 호는 매암(梅菴)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진사 조건(曺健)이고 어머니는 참의를 지낸 김이성(金以誠)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당시 석복촌(席卜村)]에서 태어났다. 1561년(명종 16)에 남계서원을 창건하여 정여창(鄭汝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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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복현의 문집. 정병하(鄭昞夏)와 정우진(鄭禹鎭)은 모두 발문에 간행 시기를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권도용(權道溶)[1877~1936]이 발문에서 ‘병자년’이라 했으니 생몰년에 비추어 보면 1936년이다. 정복현(鄭復顯)[1521~1591]의 자는 수초(遂初), 호는 매촌(梅村)이다. 본관은 서산(瑞山)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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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문신. 박여량(朴汝樑)[1554~1611]의 자는 공간(公幹), 호는 감수재(感樹齋)이다.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1554년 경상남도 함양군 가성촌(加省村)[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가성마을]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박거의(朴居義), 할아버지는 박응성(朴應星), 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郎) 박현좌(朴賢佐)이다. 어머니는 합천이씨(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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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조경덕의 문집. 조경덕(曺敬德)[1556~1643]의 자는 득이(得而), 호는 보계(葆溪)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매암(梅菴) 조식(曺湜)[1526~1572]이다.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박숙현(朴叔賢)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하였다. 당시 삼고선생(三古先生)으로 불리었다. 사호(思湖) 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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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관의 문집. 노관(盧祼)[1522~1574]의 자는 자장(子將), 호는 사암(徙庵)·상재(尙齋)·앙사(仰思)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노우명(盧友明)[1471~1523]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시민(權時敏)[1464~1523]의 딸이다.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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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활동한 서계 양홍주의 문집. 양홍주(梁弘澍)[1550~1610]의 자는 대림(大霖), 호는 서계(西溪)이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양희(梁喜)[1515~1580]이다.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연년(李延年)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하였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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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일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설 유교 중등 교육기관. 『여지도서』에 의하면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는 남계서원(蘫溪書院)·당주서원(溏洲書院)·백연서원(栢淵書院)·도곡서원(道谷書院)·구천서원(龜川書院) 등 5곳이 있었고, 안의 지역에는 용문서원(龍門書院)·황암사우(黃巖祠宇)·성천서원(星川書院)·역천향사(嶧川鄕祠)·구연향사(龜淵鄕祠) 등 5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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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후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문필의 문집. 강문필(姜文弼)의 자는 희로(姬老), 호는 송정(松亭)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여중(姜汝仲)다. 생몰연도는 알 수 없다. 다만 노진(盧禛)[1518~1578]과 임훈(林薰)[1500~1584)에게 수학한 것으로 보아 16세기 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암(梅庵) 조식(曺湜), 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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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도희령의 문집. 도희령(都希齡)[1539~1566]의 자는 자수(子壽),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진사 도득린(都得麟)이다. 어머니는 야성송씨(冶城宋氏)로, 송희동(宋熙仝)의 딸이다.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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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문신. 양홍주(梁弘澍)[1550~1610]의 자는 대림(大霖), 호는 서계(西溪),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2남 4녀를 두었다. 장남은 양황(梁榥)[1575~1597], 차남은 양원(梁榞)[1590~1650]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양관(梁灌)[1437~1507], 할아버지는 첨정(僉正) 양응곤(梁應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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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출신인 옥계 노진의 문집. 노진(盧禛)[1518~1578]의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우재(迂齋)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배우고 김인후(金麟厚)[1510~1560], 조식(曺植)[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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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우적의 문집. 우적(禹績)[1509~1582]의 자는 공숙(功叔), 호는 우천(愚泉)이다.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당시 우항(牛項)]에서 태어났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에게 수학하였고,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과 이요당(二樂堂) 주이(周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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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 및 활동 제반. 함양군의 유교 내지 유학은 조선왕조의 건국과 더불어 사상적인 토대로서 정치와 교육 등 사회 모든 부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성리학의 보급 및 발전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왕조가 교체되는 여말선초 시기 함양군에는 박충좌(朴充佐), 조승숙(趙承肅)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은둔하며 교육에 종사한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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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청향당 이원의 『청향당실기(淸香堂實記)』 간행을 위해 판각한 조선 후기 목판. 청향당(淸香堂) 이원(李源)의 본관은 합천이다. 자는 군호(君浩)이고, 호는 청향당이다. 33세에 진사에 합격한 이후 심성수양과 학문에 매진하였다. 일찍이 남명 조식과 교유하였고, 퇴계 이황과도 도의로 사귀며 학문적 교류를 하였다. 46세에 곤양 훈도(昆陽訓導)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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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안광진의 문집. 안광진(安光鎭)[1860~1935]의 자는 치형(致亨), 호는 임천(瀶川)이다. 본관은 순흥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안택륜(安宅倫), 할아버지는 안극행(安克行), 아버지는 안재삼(安在三)이다. 외할아버지는 하상린(河尙鱗)이다. 사촌형 지산(芝山) 안효진(安孝鎭)과 학문을 연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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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문신. 임희무(林希茂)[1527~1577]의 자는 언실(彦實), 호는 남계(蘫溪)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아버지는 참봉 임각(林珏)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시민(權時敏)[1464~1523]의 딸이다. 남계 임희무는 1527년(중종 22) 함양군 동쪽 서평촌[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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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는 장항마을에서 따온 이름으로 노루목, 노리목, 장항리, 장항동 등으로 불렸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는 지형이 노루 새끼가 어미를 돌아보는 형국이며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 와서 보니 마을이 노루의 목 부분에 입지하고 있어 노루목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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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한 학자.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唐谷)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1488년(성종 19)에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인 나주박씨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정희보는 조선 성종 때부터 명종 때까지 교육에 전념한 삼남[충청도·전라도·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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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유재란 때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의 황석산성 전투에서 순국한 문신. 조종도(趙宗道)[1537~1597]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예안현감을 지낸 조응경(趙應卿)[1487~1549], 부친은 참봉 조언(趙堰)이다. 모친은 부사 강희신(姜姬臣)의 딸이다.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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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한 등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진주강씨는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하여 본관을 진양(晉陽)[지금의 진주(晉州)]로 하는 토성(土姓)을 하사받았다.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삼고 본관을 진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16세손 강도(姜度)에 이르기까지 가계가 외줄로 내려오다가 강도 이후 강희경(姜希經)과 강종일(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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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조선 초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한문으로 지어진 시.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시는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앞선 통일신라 시대 최치원과 고려 시대 박충좌(朴忠佐) 등의 인물이 배출되었으나 함양과 관련한 그들의 한시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말선초의 조승숙(趙承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몇몇 시구가 그의 작품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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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덕무가 경상도 함양 지역에서 저술한 영남지방 견문기.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자는 무관(懋官), 호(號)는 아정(雅亭)·형암(炯庵)·청장관(靑莊館)·동방일사(東方一士)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무림군(茂林君) 이선생(李善生)[1410~1475]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이성호(李聖浩)[1718~?]이다.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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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재직 중에 조성된 상림과 현재 상림의 모습. 상림은 제방을 보호하기 위한 숲이라 하여 호안림(護岸林)이라 한다.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상림은 사람의 힘으로 조성된 숲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다. 또한 홍수피해로부터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숲이기도 하다. 이러한 숲을 만든 조상들의 지혜는 상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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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에 있는 신고당 노우명의 신도비와 그 부부의 묘표. 옥계(玉溪) 노진(盧禛) 신도비의 위쪽에 있다. 신도비는 남향으로 안장된 노우명(盧友明)[1471~1523] 부부 쌍분의 축대 아래의 동쪽에서 서향으로 서 있다. 묘표는 각각의 분묘 정면에 남향으로 서 있다. 신도비는 노우명의 아들 노진이 이조판서를 지내게 되자 증직되어 15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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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과 관련한 유명한 문인들의 옛시와 현대시를 엮어 만든 향토 시집. 『함양예찬』은 2002년, 한국문인협회 함양지부에서 현대 시인들이 함양을 방문하여 노래한 250여 편의 현대시와 옛 선인들이 쓴 300여 수의 한시를 정리한 것이다. 함양군의 빼어난 경치에 탄복하고 지리산을 유람하였던 선인들의 시와 현대 시인들이 함양군의 아름다움에 대해 쓴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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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화림동천의 수려한 자연경관에 세워진 누정과 그 속에서 조화를 추구한 선비 문화 이야기.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이다. 대개 살림집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건축물이다.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정신적 기능이 강조된 공간이다. 원래 방이 없이 마루만 있고 사방이 두루 보이도록 막힘없이 탁 트였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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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서상건의 문집. 서상건(徐相建)[1865~1911]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해사(海史), 본관은 달성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서기보(徐麒輔)는 첨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고, 아버지 서인순(徐璘淳)은 호가 화헌(華軒)이다. 조상의 공훈(功勳)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모친은 밀양박씨 참의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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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출신 유학자 노사예의 실기. 노사예(盧士豫)[1538~1594]의 자는 입부(立夫), 호는 홍와(弘窩),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신고당(信古堂) 노우명(盧友明)[1471~1523], 작은아버지는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이다. 1552년에 함양의 남계서원이 창건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