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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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과 관련한 한문학, 국문학 작가와 작품. 함양군에는 신라의 최치원부터 고려·조선의 뛰어난 문인들이 관리로 부임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의 함양군에서도 여러 문인들에 의해 왕성한 문학 창작 활동으로 계승되고 있다. 함양군의 최고(最高) 문인은 최치원(崔致遠)[857~?]이며, 최고(最古) 문인도 최치원일 것이다. 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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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과 서하면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전국적으로 백운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산이 30여 곳에 이른다. 백운산이라는 이름은 산 전체가 한 조각 흰 구름처럼 보이는 형상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경상남도 함양군의 백운산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유래가 없어 다른 지역의 유래에 따라 유추할 뿐이다. 백운산은 북쪽의 민주지산(珉周之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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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조경덕의 문집. 조경덕(曺敬德)[1556~1643]의 자는 득이(得而), 호는 보계(葆溪)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매암(梅菴) 조식(曺湜)[1526~1572]이다.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박숙현(朴叔賢)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하였다. 당시 삼고선생(三古先生)으로 불리었다. 사호(思湖) 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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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고 있는 성씨. 고려의 후삼국 통일 후, 940년(태조 23)경에 3가지 주요 정책이 실행되었다. 역분전(役分田)의 지급, 군현 개편, 토성(土姓)의 분정(分定)이 그것이다. 이들 정책은 궁극적으로 호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방을 통제하고 중앙집권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에게 성씨를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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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목숨을 바쳐 자신의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과 시댁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바친 부녀자. 위기 상황에서 죽음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고난 속에서도 오랜 세월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주로 일컫는 말이며 넓게는 남편과 시가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을 말한다. 열부(烈婦)와 절부(節婦)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같은 의미로 쓰인다. 조선은 초기부터 이른바 정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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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와 함양읍 구룡리 사이를 넘는 고개. 오도재라는 이름과 관련하여 이 길을 오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전설이 있으며 김종직, 정여창, 유호인, 서산대사, 인오대사 등 많은 유학자와 수행자들이 이 고개를 넘었다고 전해진다. 『영남지도』-함양, 『광여도』-함양, 『1872년지방지도』-함양에는 오도치가 표기되어 있으며 『대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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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와 함양읍 구룡리 사이를 넘는 고개. 오도재라는 이름과 관련하여 이 길을 오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전설이 있으며 김종직, 정여창, 유호인, 서산대사, 인오대사 등 많은 유학자와 수행자들이 이 고개를 넘었다고 전해진다. 『영남지도』-함양, 『광여도』-함양, 『1872년지방지도』-함양에는 오도치가 표기되어 있으며 『대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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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생의 학자. 정수민(鄭秀民)[1577~1658]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 할아버지는 정희설(鄭希卨), 아버지는 정언남(鄭彦南)이다. 어머니는 송씨(宋氏)이다.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동리(東里)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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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정여창의 생애와 정치활동, 학문과 사상 그리고 당시 영남 사림의 동향을 고찰. 정여창은 1450년(세종 32) 경상도 함양의 덕곡리(德谷里) 개평촌(介坪村)[지금의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자택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정지의(鄭之義)로 판종부시정(判宗簿寺正)을 역임했으며, 할아버지 정복주(鄭復周)는 고려 말 판전농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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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조선 시대에 지어진 한시 가운데 제목을 내어서 지은 작품. ‘제영’이란 어떤 경관이나 사물·사건·서화 등을 한시로 표현한 모든 작품을 일컫는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는 경상남도 함양과 관련하여 창작된 한시를 모두 포괄한다고도 볼 수 있다. 17세기 중반에 출간된 인문지리서인 『천령지』서문에 의하면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주요 인물로 최치원·김종직·정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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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1392~1910) 동안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역사. 경상남도 함양 지역은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강주에 속해 있었으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왕조가 건국된 이후 1395년(태조 4)에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경상도 진주진관(晉州鎭管) 소속이었다. 조선 후기 영조 때인 1729년에는 함양부(咸陽府)로 승격되었다. 안의현(安義縣)은 조선 건국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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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상의 문집. 노상(盧祥)의 자는 경휴(景休), 호는 졸재(拙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영경전참봉(永慶殿參奉)을 지낸 노우영(盧友英)[1471~1551]이다. 어머니는 진양정씨(晉陽鄭氏)로, 정윤창(鄭尹昌)의 딸이다. 두계(杜溪) 서암(西巖)에 은거하며 학문에 힘썼다. ‘졸렬함으로써 뜻을 고상히 한다’[졸이상지(拙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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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656년에 정수민이 편찬하고 1888년에 후손들이 간행한 향토지. 정수민(鄭秀民)[1577~1658]은 조선 후기 학자이다.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동리(東里)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증손자이다. 학덕과 품행이 정여창과 비슷하다 하여 소일두(小一蠹)라고 불리었다. 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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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정수민의 시문집. 정수민(鄭秀民)[1577~1658]의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동리(東里)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증손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하에서 배웠다. 성품이 공손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겸손하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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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에게 충성을 바친 신하. 전근대 함양과 안의 지역의 충신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와 『천령지(天嶺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충신에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에 충절을 지킨 인물,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킨 인물, 1467년 이시애의 반란을 진압한 인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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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에 있는 고개. 팔량현이라는 이름은 마한의 마지막 왕이 행궁으로 삼아 최후의 항전을 벌인 무대가 현재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 일대인데 남원시 운봉 일대를 8명의 뛰어난 병사가 지켰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함양과 『천령지』에는 “팔량현은 군 서쪽 30리[약 11.7㎞] 지점에 있다. 전라도 운봉현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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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노수를 시조, 노숙동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풍천노씨의 본관 풍천(豊川)은 황해도에 있은 옛 지명이다. 고구려 때는 구을현(仇乙縣) 또는 굴천(屈遷)이었다. 757년(경덕왕 16) 굴현현(屈峴縣)으로 개칭하고 양악군(楊岳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이름을 바꾸고 995년(성종 14)에 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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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노수를 시조, 노숙동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풍천노씨의 본관 풍천(豊川)은 황해도에 있은 옛 지명이다. 고구려 때는 구을현(仇乙縣) 또는 굴천(屈遷)이었다. 757년(경덕왕 16) 굴현현(屈峴縣)으로 개칭하고 양악군(楊岳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이름을 바꾸고 995년(성종 14)에 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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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정도정을 시조로 하고 정지의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함양군의 하동정씨(河東鄭氏)는 고려 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를 지낸 정지의(鄭之義)가 오늘날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 들어와 정착하면서 세거가 시작되었고, 조선 시대에도 하동정씨의 함양 입향은 몇 차례 더 이루어졌다. 17세기 중반 조종운(趙從耘)[1607~1683]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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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한문으로 이루어진 학문 및 문학 전반을 일컫는 말.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문학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의 고운 최치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최치원은 당시 천령군수로 부임하여 상림(上林)을 조성하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고, 그가 자주 오르내리던 관아 옆 누각을 후인들이 학사루(學士樓)라 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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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조선 초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한문으로 지어진 시.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시는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앞선 통일신라 시대 최치원과 고려 시대 박충좌(朴忠佐) 등의 인물이 배출되었으나 함양과 관련한 그들의 한시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말선초의 조승숙(趙承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몇몇 시구가 그의 작품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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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조정을 시조로 하고 조경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함안조씨(咸安趙氏) 시조 조정(趙鼎)은 고려조에서 원윤(元尹) 벼슬을 하였다. 조정의 후손이 함안에 정착하여 대대로 세거하면서 본관을 함안으로 삼았다. 조정 이후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는 조간(趙幹)-조단석(趙丹碩)으로 이어지고, 조단석은 아들 조시우(趙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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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현황을 기록하여 2012년에 발간한 향토지.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유산, 정치와 행정, 경제와 산업 등 모든 정보를 망라하여 각 분야의 발전상 및 각종 사료와 문화재 자료를 발굴 수집하는 등 새로운 각도에서 2012년 11월에 함양군에서 발행하였다. 함양군의 역사 자료는 춘수당(春睡堂) 정수민(鄭秀民)[1577~1658]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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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어버이에게 효를 다한 자녀. 효자는 살아 계신 부모를 지극히 모시는 자식을 말하며, 돌아가신 후에 장례나 제사를 극진히 모시는 것도 포함한다. 전통 시대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 효자는 『경상도읍지』에 함양 33명, 안의 18명 등 총 51명이 확인된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읍지 『천령지(天嶺誌)』에 효자 17명,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2명이 기록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