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B03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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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시장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수연 |
[실속 있고 젊게 사는 미장원 내외]
금잔디미장원의 미용사 문금자 씨와 미장원에서 아내를 도와주는 남편 이사구 씨가 옛날 향기 물씬 나는 단출한 미장원 안에서 우리를 반겨 준다. 두 사람은 덕산읍 일대에서 머리를 쪽진 새댁들이 쪽머리를 자르고 파마머리를 시작한 게 이 미장원이라고 운을 띄운다. 이사구 씨는 나이가 일흔여섯 살이나 되는데도 정말 정정하고 목소리도 또랑또랑하여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두 사람은 머리카락을 잘라 팔던 새댁들이 벌써 일흔 살이 넘고 여든 살도 넘도록 이렇게 한 동네에서 50년 동안 미장원을 했다. 그러다 보니 미용사도 늙고 미용사 신랑도 늙고 미장원도 늙었단다.
그때 옆에 있던 아내 문금자 씨가 불을 하나 더 켰으면 좋겠다고 남편한테 말하자, 남편 이사구 씨가 천장에 달린 형광등 두 개 중 꺼져 있던 하나를 마저 켰다. 그러면서 머쓱한 듯 이것도 전기를 좀 아끼려고 필요할 때 이렇게 하나씩 켜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용사인 아내가 “우리는 실속으로만 산다.”고 한다. 부족한 것은 없어도 실속 있게 산다는 것이다.
마침 미장원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서 파마를 하고 있었다. 오늘 들어온 손님 중 몇 번째냐고 물었더니 오전에 할머니 두 분이 하고 가시고 지금이 세 명째란다.
[할머니들 쪽진 머리 다 내 손으로 잘랐어]
옛날에 머리카락을 외국으로 수출했던 적이 있었다. 가발을 만들기 위해 사람 머리카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는 여자들이 쪽을 지니까 머리카락을 사러 마을마다 다니기도 하고, 장날에 할머니들이 나오면 머리카락을 팔라고 권유했다. 그러면 거의 다 그러마고 해서 쪽진 머리를 풀어 놓고 머리카락을 자른 뒤 “이건 얼마 정도 됩니다.” 하고 돈을 주었다.
그런데 머리를 잘라 팔았으니까 애들처럼 돌아다닐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머리카락을 팔고 파마들을 시작한 것이다. 문금자 씨도 그렇게 가방에 파마약이랑 도구들을 챙겨서 시골로 들어가 사람들 쪽도 잘라 주고, 또 파마도 많이 해 주고 해서 돈이 어느 정도 모이자 미장원을 차렸다.
그때 미장원 안에서 파마를 하던 할머니가, 그 당시 문금자 씨가 자신의 쪽진 머리도 잘라 줬다면서, 그것이 고마워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금잔디미장원을 다닌다고 거든다. 그러면서 옛날에 쪽진 머리를 잘라서 그 머리를 팔아 자식들 공부를 가르친 분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한결같이 이 금잔디미용실을 찾는다는 이야기까지 보태었다.
[금잔디미장원? 포근포근하잖아]
미장원 이름이 왜 금잔디미장원일까 생각을 하다가 “아주머니가 금잔디를 좋아하셨어요?”라고 물으니 이사구 씨가 대답을 한다.
“간판을 하나 쓰려고 가니까 금잔디가 좋잖아. 포근포근하고 따뜻따뜻하고 느낌이 좋잖아. 상상을 해 봐. 공원 같은데 가서 잔디에 포근포근하면 앉아 보고 싶고 그렇잖아. 그치? 내가 무심코 ‘금잔디로 해요.’ 한 게 금잔디가 된겨.”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던 미장원 이름에는 별다른 뜻이 없었지만 포근포근한 그 느낌이 전해져 온다. 낡디 낡은 간판이 아직도 걸려 있지만 그것도 멋이라고 생각을 한다.
간판을 새로 하고는 싶은데, 그러면 당장 몇 십만 원이 들어가니 그럴 바엔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먹고 말 거라는 말에 문금자 씨가, “간판이 다 떨어져서 바꿔야 되는데 이 양반이 안 바꾼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한다.
그러자 이사구 씨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미장원 오는 양반들이 우리 집 전화번호 다 알아. 그러니까 간판에 전화번호 떨어져도 괜찮아. 허허허.”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