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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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生儀禮 |
이칭/별칭 | 통과의례,일생의례,생활의례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재원 |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민들이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개설]
평생의례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생활하다가 일생을 마칠 때까지 삶의 중요한 단계마다 치러야 하는 여러 가지 의식이다. 이를 통과의례(通過儀禮)·일생의례·생활의례 등이라고도 한다. 즉 관혼상제의 의례를 말하는데, 조선시대부터 숭상된 유교의 바탕 위에서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번잡스러운 면도 없지는 않았다. 1973년 5월부터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과 「가정의례법」이 공포·시행되어 모든 것이 간소화된 오늘날 구식 의례를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옛날의 의례 형식을 그대로 쫓을 필요도 없다고 본다.
그러나 옛날이나 오늘이나 그 의례 속에 나타나는 의미와 정신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그 의미와 정신을 정확히 인식하고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의식을 알아보는 것은 뜻있는 일이라 하겠다. 이것이 바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점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진천 지역에서 전래되어 오는 습속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하는 여러 가지 생활의례를 간략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출산의례(出産儀禮)]
옛날 진천 지역에서는 과학과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출산 전후의 미신에 가까운 주술적(呪術的) 습속이 많았다.
1. 백일기도(百日祈禱): 조선시대에는 아들이 중요했으므로, 아들이 없는 부인들은 백일치성(百日致誠)을 드렸다. 이것은 아들을 낳고자 하는 기자신앙(祈子信仰)에서 오는 의례로 가장 흔한 것은 산이나 물가로 나아가 치성을 드리는 것이다. 진천 지역에서는 문백면 소두머니[牛潭]의 동서용왕당(東西龍王堂)과 삼신당(三神堂)에서, 또 양천산 기자암(祈子岩)에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또한 아들을 낳은 산모의 속옷을 얻어다 입으면 아들을 낳는다거나 아들을 낳은 집의 금줄을 훔쳐다 감추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민간신앙이 있었다.
2. 태몽(胎夢)과 태점(胎占): 부인이 아기를 갖게 되면 꿈을 꾼다고 하는데, 그 남편이나 가족이 꾸기도 한다. 조·고구마·고추·감 등의 식물성과 호랑이·돼지·학·해 등의 동물성이 태몽이면 아들이고, 보리·대추·사과·복숭아·꽃·물고기·작은 동물·조개·달·비녀·반지 등의 태몽이면 딸을 낳는다고 믿었다. 이렇게 해서 임신이 되면 여러 가지 금기(禁忌) 행동을 한다. 아기를 가진 부인이 담을 넘으면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는 아이를 낳고, 닭고기를 먹으면 닭살과 같이 되고, 문을 바르면 벙어리가 된다고 믿어 모든 행동을 삼가고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가졌다. 점(占)을 쳐서 태어날 아기의 성별을 알아보는 태점도 성행했다. 음양수리법(陰陽數理法)으로 따져서 홀수가 나오면 남자, 짝수면 여자가 된다. 또한 바늘에 실을 꿰어 맥박이 뛰는 오른쪽 팔목 위에서 흔들어 바늘 끝이 가로로 흔들리면 딸, 세로로 흔들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
3. 금선[禁線]: 해산(解産)할 때 난산(難産)일 경우에는 서랍을 전부 열어 놓기, 남편이 맷돌을 들고 방을 돌기, 수수 삶아 물 먹이기 등의 주술 방법이 행해졌다. 무난히 해산했다는 표시로 대문에 금줄을 다는데 인줄이라고도 한다. 아들을 낳으면 금줄에 숯·솔가지·고추·돌멩이 등을, 딸일 경우는 숯·솔가지·미역 등을 달았다. 금줄은 세이레[21일] 동안 다는데, 그 안에 외인(外人)이 출입하면 부정(不淨)하다 하여 꺼렸다. 특히 상제(喪祭)들은 더욱 꺼렸다. 세이레가 지나면 금줄을 떼고 외인의 출입을 허락한다. 이 때 이웃 친지들은 아기가 잘 생겼다고 하면 수명이 짧다 하여 못생겼다고 하는 말로 축하해 주는 습속도 전한다.
4. 백일(百日): 아기가 출생한 지 100일이 되면 백일잔치를 한다.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만들어 이웃에 돌리며 아기가 튼튼하게 자라기를 빈다. 백일 떡을 받은 이웃 친지들은 아기가 무병장수(無病長壽)하라는 뜻으로 실[絲]을 주며 축하한다.
5. 돌잔치[晬日宴]: 출생한 아기가 1년이 되는 날을 돌일[晬日]이라고 하며, 이웃과 친척들을 불러 돌잔치를 연다. 돌잔치에 온 사람들은 수저나 금반지 등의 선물을 하고 축하해 준다. 물론 백일 때와 마찬가지로 돌떡을 만들고 돌상[晬盤]을 차려 돌잡기[試週]를 한다. 아기에게 색동옷을 입히고 예쁘게 단장시킨 다음 돌상에 여러 가지 물건을 올려놓는다. 남자 아기가 쌀·돈을 잡으면 부자가 되고, 국수·실을 잡으면 오래 살고, 활을 잡으면 무예(武藝)에 뛰어나고, 붓·책·먹 등을 잡으면 문인(文人)이 된다고 점쳤다. 또 여자 아기가 바늘·실·가위 등을 잡으면 덕이 있고 어진 어머니가 된다고 미루어 짐작한 습속이다.
[관례(冠禮)]
옛날에는 진천 지역의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었다는 뜻으로 갓을 씌워 주고 축하해 주었다. 이것을 관례라 한다. 남자는 20세, 여자는 15세에 관례를 치렀다. 오늘날도 성년의 날 행사를 하고 성년식(成年式)을 하고 있다. 지난 1973년부터 매년 5월 7일을 성년의 날로 정하여 운영해 오다가 1985년부터 5월 셋째주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정하여 남녀 똑같이 만 20세가 되면 성년식을 갖고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해 주고 있다. 옛날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관례를 치룬 후에는 어른으로 대우받으며, 모든 법적인 문제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成人)이 되는 것이다.
[혼례(婚禮)]
남녀가 성장하여 화합하는 것을 결혼(結婚) 또는 혼인(婚姻)이라고 하며, 그 예식을 통틀어 혼례라 한다. 예전의 혼례는 오늘날과 달리 중매에 의한 전통혼례로 치러졌다. 1900년대 중반까지는 여자와 남자 모두 20세가량에 혼인을 했으며, 23세가 넘으면 노처녀·노총각이라고 했다. 남자 보다 여자가 보통 2~3살 정도 많았기에 꼬마신랑이 흔했다. 간혹 경제적 형편이 어려우면 딸을 미리 시집보내는 ‘민며느리’도 있었다. 11~12세에 미리 신랑 집으로 가서 4~5년 정도 생활하다가 혼인식을 올린다. 지금은 없어진 풍습이다.
오늘날은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사치와 낭비를 피하고 생활 형편에 맞게 간소하게 치루고 있으나 옛날에는 반드시 육례(六禮)를 치렀다. 그러나 육례는 지방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니 지금은 많이 단순화되어 그 일부만 전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에 진천 지역에서 치러졌던 육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납채(納采): 신랑이 될 사람의 집에서 신부될 사람의 집에 청혼(請婚)을 하는 예식이다. 중신애비·중매쟁이·매파(媒婆) 등이 중간에 서서 혼인을 논의했다.
2. 문명(問名): 규수(閨秀)의 어머니의 이름을 물어서 신랑 신부의 장래를 점치는 예식이다. 부모들은 서로의 가문과 사람됨을 알아보고 궁합(宮合)을 따져 본 후 선을 보며 결혼을 합의하게 된다.
3. 청기(請期): 신랑 집에서 좋은 결혼 날짜를 받아 신부 집에 가부(可否)를 묻는 것이다. 사주(四柱)와 함께 보내기도 했다. 사주란 신랑 될 사람의 생년월일과 출생시간을 간지로 쓴다. 모두 여덟 자로 되기 때문에 사주팔자(四柱八字)란 말이 오늘날도 많이 쓰인다.
4. 납길(納吉): 신부 집에서 결혼 날짜를 확정하여 신랑 집에 알려주는 것이다. 신랑 집에서 택한 날로 할 수도 있고, 신부 집에서 다시 정할 수도 있다. 연길(涓吉)·택일(擇日)이라고도 한다.
5. 납폐(納幣):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예물(禮物)과 혼서(婚書)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납징(納徵)이라고도 한다. 납폐란 쉽게 말해서 함(函)이다. 함 속에 넣는 예단으로는 푸른 색·붉은 색 비단을 보통 3벌 또는 5벌을 보내는데, 신랑 집의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예물을 보내기도 했다. 이 함을 함진아비가 지고 신부 집으로 간다. 함진아비는 복이 많고 해로(偕老)한 남자, 특히 첫아들을 낳은 사람을 가려 보냈다. 요즈음은 신랑 친구들이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6. 친영(親迎):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신부를 맞아 오는 예식을 말한다. 신랑이 혼례를 올리기 위해 신부집에 가는 것을 초행(初行)이라 했다. 신부집에 당도한 신랑은 예식 전에 쉬는 장소인 사처(舍處)에서 나와 전안청(奠雁廳)으로 들어가 초례(醮禮)를 지낸다. 이것은 신랑 신부가 백년해로를 맹세하는 의식이다. 신랑은 동쪽에 신부는 서쪽에 위치하여 신부가 먼저 신랑에게 4번 절하면 신랑은 신부에게 2번 절하는 교배례(交拜禮)를 한다. 이어서 신부가 술을 따라 신랑에게, 신랑이 신부에게 권하는 합근례(合巹禮)를 한다. 결혼 첫날밤에 신랑 신부가 신방(新房)에 들면 동네 부인이나 친척들이 문에 구멍을 뚫고 엿보았는데, 이것을 신방지키기[守新房]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 혼례에서는 혼인 뒤 신부가 바로 시집으로 가지 않는다. 보통 1년에서 3년, 또는 그 이상 친정에 머물렀다. 따라서 신랑은 혼례식을 올리고 혼자 집으로 와서 신부가 친정에 있는 동안 신부 집에 다니러가는 것을 재행(再行)이라고 한다.
친정에 있던 신부가 시집으로 오는 것이 신행(新行)이다. 신부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 각각 4번 절하고 폐백(幣帛)을 올린다. 이때 가족·친척들은 부귀다남(富貴多男)을 축복해 준다. 시집 온 신부가 친정(親庭)에 다녀오는 것을 근친(覲親)이라고 한다.
[회갑(回甲)]
옛날에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하여 자손들은 부모들이 오래 사는 것을 매우 기뻐하고 경축하였다. 50세에 오순, 60세에 육순, 61세에 회갑(回甲) 잔치를 열었다. 또 62세에 진갑, 70세에 칠순, 80세에 팔순 잔치를 열었다. 현재는 회갑 잔치가 가장 성행한다.
태어난 지 61세가 되면 태어난 해의 간지가 돌아오는데, 이것을 의미해서 회갑 또는 환갑(還甲)이라고 한다. 회갑 날에는 자손들이 마련해준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는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떴다면 고운 색의 천으로 깃과 동정에 덧댄 한복을 입지 못한다. 해로를 하지 못한 것의 표식인 셈이다.
사망한 사람의 회갑은 사갑(死甲)이라 하여 당일 아침 일찍 산소에 가서 제사(祭祀)를 지내고, 옷 한 벌[죽은 사람의 의복을 상징하는 흰색 옷]을 마련하여 그 옆에서 태운다. 이 날은 집에서 가족 및 친지들이 모여 식사라도 한 끼 나누어 먹으면서 망자(亡者)를 회고한다. 혼인 후 60년 동안 해로(偕老)를 했다면 회혼례를 치러준다. 부모보다 먼저 사망한 자손이 없고 궂은 일이 없는 경우에만 행하므로 매우 드물게 행해졌다. 다시 한 번 혼례를 치른다는 의미에서 혼례복으로 성장(盛裝)을 하고 예식을 베푼다.
[상례(喪禮)]
사람이 죽었을 때 치르는 의식 절차를 상례라 한다. 상례는 죽은 자를 죽은 자의 세상으로 보내고, 산자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산자의 세계로 되돌아오게끔 하는 의례이다. 병이 깊은 분의 손톱 밑이 노란색으로 변하면 곧 죽음에 이른다고도 하고, 잠을 자는 자세가 모로 누어 자지 않고 천정을 보고 똑바로 누어서 자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면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까마귀가 산에서 나와서 마을을 바라보며 울면 반드시 초상이 난다는 속설이 있으나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한다.
상을 당했을 때의 상태에 따라 호상(好喪)과 악상(惡喪)이 있다. 호상은 준비가 가능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말하며,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악상이라고 한다. 호상은 본인이 60~70세 이상의 수(壽)를 누렸거나, 자손이 모두 무탈한 경우에만 해당된다. 이럴 경우에는 출상하기 전날에 동네 사람들이 상여를 꾸며 한바탕 놀이를 한다. 시신을 모시지 않고 상여를 꾸며 집 앞 마당에서 상여소리를 하며 논다. 장례 날에 있을 일을 예행 연습하는 동시에 상을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망자를 즐겁게 보내기 위한 의례이기도 하다. 악상은 미혼자(未婚者)의 죽음이거나, 집 바깥에서 죽은 사람[客死], 임신부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은 경우가 해당된다. 이럴 경우에는 많은 의례가 생략된 채 간소하게 치러진다.
옛날에는 매우 복잡하였으나 오늘날 진천 지역에서는 「가정의례준칙」으로 간소하고 엄숙하게 치르고 있다. 상례 순서는 초종(初終)·염습(殮襲)·치장(治葬)·우제(虞祭)·대소상(大小祥)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 초종: 사람이 운명하여 염습하기 전까지를 초종이라고 한다. 자손들이 운명의 최후를 지켜보는데, 이것을 임종(臨終)이라 한다. 운명과 동시에 풀솜으로 입·코·귀를 막는 속광(屬纊)을 하고 곡(哭)을 하면서 시체를 거두고, 돌아가신 분의 혼령을 다시 불러들이는 고복(告復)을 한다. 고복은 초혼(招魂)이라고도 한다. 이어서 발상(發喪)을 한다. 호곡(號哭)을 하며 남자 상제들은 흰색 도포나 두루마기를 입는다. 부친상(父親喪)인 경우는 왼편 소매를 빼고, 모친상(母親喪)인 경우는 오른편 소매를 뺀다. 여자 상제들은 흰옷으로 소복하고 머리를 푼다. 발상이 끝나면 호상(護喪)이 모든 장례식을 보살피게 된다. 호상은 상례에 밝고 경험이 많은 친척이나 친지가 맡는 것이 보통이다.
2. 염습: 시체를 목욕시키고 관(棺)에 넣기까지의 과정을 염 또는 습이라 한다.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손톱 발톱을 다듬는다. 다음에 속포(束布) 7개를 간격을 맞춰 가로 세로로 묶는데 매듭은 21개나 된다. 염이 끝난 시신을 칠성판(七星板)에 옮기고 입관(入棺)시킨 다음 혼백을 영좌(靈座)에 모시고 명정(銘旌)을 세운 후 상제들은 복(服)을 입는다. 남자 상제는 삼베 바지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수질(首絰)을 쓴다. 수질은 머리에 쓰는 새끼줄이다. 그리고 짚신을 신고 요질(腰絰)[허리에 띠는 굵은 새끼]을 띠고 상장(喪杖)을 짚는다. 부친상에는 대나무, 모친상에는 미루나무 지팡이를 쓴다. 여자 상제는 삼베 치마저고리를 입고 수질과 요질을 띠고 짚신을 신는다. 이어서 조문객을 맞는다.
3. 치장: 발인제(發靷祭)로부터 시작하여 관을 땅 속에 묻는 순서를 치장 또는 장례라 한다. 보통 장례는 3일장, 5일장, 7일장이 있는데,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은 3일장을 선호한다. 상여가 집을 떠나기 전에 발인제를 지내는데, 상주가 분향(焚香)하고 술을 올리면 상제들은 곡을 하고 재배한다. 장지에 도착하면 천광(穿壙)과 회격(灰隔)에 이어 하관하게 된다. 광중(壙中)을 파는 일을 천광이라 하고, 그 안을 회로 바르는 것을 회격이라 한다.
4. 우제: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궤연(几筵)을 꾸민 후 처음 지내는 제사를 초우제(初虞祭)라 한다. 장삿날의 간지(干支)가 강일(剛日)[甲·丙·戊·庚·壬]이면 장사 이튿날 지내고, 유일(柔日)[乙·丁·巳·辛·癸]이면 하루 지나서 지내는 재우(再虞)가 있다. 재우도 초우제와 마찬가지로 지낸다. 삼우(三虞)는 재우 바로 다음날 초우와 같이 지내는 제사이다.
5. 대소상: 초상 후 석 달째 되는 날의 강일에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 또한 초상 후 만 1년 만에 지내는 제사를 소상(小祥)이라 하고, 2년 만에 지내는 제사를 대상(大祥)이라 한다. 소·대상이 끝나면 완전히 탈상을 한다. 탈상 후는 사망한 날에 기제(忌祭)를 지낸다.
[제례(祭禮)]
제례란 돌아가신 선조께 가문의 화평과 발전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로서 기제·차례(茶禮)·시제(時祭) 등이 있다.
1. 기제: 해마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이다. 제삿날은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음식을 정결하게 차리고 몸가짐을 정숙히 갖는다.
2. 차례: 설날·추석 또는 단오·한식날에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차례는 경건하고 바른 마음가짐을 하고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며, 나아가서는 가문의 번영과 발전을 비는데 더욱 큰 뜻이 있다. 요즈음은 설날과 추석에 주로 차례를 올리고 있다. 차례도 기제와 비슷하게 지내는 제사지만 단배(單拜)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3. 시제: 요즈음은 시향(時享)이라고 많이 불리는 제사이다. 시제는 단오나 한식 또는 시월에 지내는데 5대조 이상 선조의 묘제를 말한다. 흔히 종손이나 산지기가 제수를 장만하여 여러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