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바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266
한자 甲-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목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2년 - 「갑옷 바위」,『함양군사』3권에 수록
관련 지명 황곡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무용담
주요 등장 인물 무명의 의병장
모티프 유형 무능한 관리 대신 의병으로 활동하는 백성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에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나섰다가 조총을 맞아 숨지자 갑옷과 칼을 바위에 묻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함양군사』 3권 416-417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정유재란 때 부모 형제가 왜적에 살해된 선비가 있었다. 그는 의병장이 되어 왜적을 물리쳤다. 주로 밤에 적의 무기고나 막사를 습격하여 불태우고 달아났다. 왜군 700여 명이 안의면 황곡에 진을 치자 의병장은 괘관산에 피란하였던 여성 4명을 뽑아 미인계를 쓰기로 하였다. 여성들을 왜군진에 보내어 주색에 만취하도록 한 뒤 아리랑을 부르면 습격하기로 하였다. 술을 마시던 왜적들이 자정이 되자 쓰러졌고, 막사에 아리랑 노래가 들렸다. 의병들이 막사를 습격하자 당황해하였다. 거의 승리를 거둘 무렵 의병장은 왜적이 쏜 조총에 맞아 피를 쏟았다. 왜적을 다 무찌르기도 전에 눈을 감는다는 분노로 부하들에게 “죽어서라도 왜놈들에게 원수를 갚을 테니, 내 칼과 갑옷을 저 바위 밑에 묻어 주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의병들은 그의 유언에 따라 칼과 갑옷을 큰 바위 밑에 묻어주었는데, 그때부터 그 바위를 갑옷바위라 불렀다.

[모티프 분석]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조선은 왜적의 침략으로 초토화되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관리에 의지할 수 없었던 백성들은 의병이 되었고, 이름 없는 의병장들의 활동은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기록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갑옷바위 전설은 의병장의 활동상을 잘 보여주는 전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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