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암과 무학대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264
한자 -庵-無學大師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목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2년 - 「은신암과 무학대사」, 『함양군사』3권에 수록
관련 지명 은신암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용추휴양림길 357[상원리 1313]지도보기
성격 인물담|풍수담
주요 등장 인물 무학대사|노인
모티프 유형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교훈담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용추계곡의 은신암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2012년 간행된 『함양군사』 3권 413-414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용추계곡에 있는 은신암은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성계의 총애를 받던 무학대사는 조선이 건국 될 때 도읍을 물색하고 있었다. 무학은 계룡산과 왕십리를, 정도전이 한양을 후보지로 주장하였는데, 결국 정도전의 뜻대로 한양에 도읍이 이루어졌다.

무학대사는 궁궐을 짓다가 사고로 허물어지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몸을 피해 정처 없이 떠돌았다. 어느 날 깊은 산중 골짜기의 산비탈에서 소를 몰고 밭을 가는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무학보다 못한 놈이라고 소를 꾸짖었는데, 무학대사는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서울 궁궐 터가 학의 설이라 학을 날지 못하게 사방을 먼저 눌러 놓고 궁궐을 지어야 할 것을 그것도 모르고 집을 지으니, 학이 날개를 치면 지어 놓은 궁궐이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러니 이런 이치도 모르는 무학이 소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오” 하고 사라졌다.

무학대사는 노인의 말대로 사방에 사대문을 먼저 세워 학의 날개를 눌러 놓고, 궁궐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무학대사는 정도전의 야심에 불안해하며, 자신이 지금의 궁궐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하였던 계획이 탄로날까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로 은신하게 되었다. 안의 심진동 계곡의 매바위를 보고 꿩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을 찾아내었다. 그곳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바로 은신암이다.

[모티프 분석]

무학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의 건국과 관련하여 전국 곳곳에 많이 전한다. 그는 풍수담과 관련하여 전국 곳곳에 많은 전설을 남겼다. 이 전설에서는 무학대사보다 더 도가 높은 노인이 등장하는데 무학대사도 알지 못한 학의 기운을 누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소보다 못한 무학대사라고 비꼬기도 한다.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권력을 창출한 무학대사이지만 그가 풀지 못한 과제를 한 농부가 알고 있었다는 것과 무학대사의 원래 계획이 알려졌다는 데서 권력과 권세에 대한 백성들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아무리 높은 도력을 지닌 풍수라 하더라도 자만해서는 안 되며, 결국 은신하며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깊은 계곡에 꿩이 알을 품고 있는 장소와 같은 아늑한 곳에 은신처를 만든 무학대사의 지략을 통해 용추계곡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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