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263 |
---|---|
한자 | 請託-逆效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목지선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2년 - 「청탁의 역효」, 『함양군사』 3권에 수록 |
---|---|
성격 | 인물담 |
주요 등장 인물 | 이후백|친척 |
모티프 유형 | 청백리의 상징이 된 인물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이후백의 청렴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청련 이후백에게 자리를 구하러 온 친척이 오히려 찾아와서 관직에 발탁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함양군사』 3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선조 때 청련 이후백은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옥계(玉溪) 노진(盧禛), 구졸(九拙) 양희(梁喜)와 교류하였고 대단히 청렴한 인물로 어떤 청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척이라도 자주 와서 문안하는 것조차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루는 집안사람이 와서 문안을 올리며 취직 자리를 구하는 뜻을 보였다. 이후백은 얼굴빛이 변하며 조용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것은 인재들을 물색해 놓은 명단이었는데 문안 온 친척의 이름도 있었다. 이후백은 “내가 장차 관직에 뽑아 쓰려던 사람들의 명단이다. 지금 자네가 벼슬을 구하는 말을 하는데 청탁으로 자리를 얻는 것은 공인의 도가 아니구나. 애석하고 안타깝다. 자네가 스스로 발설하였으니”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친척은 부끄러워 말도 없이 돌아갔다. 이후백은 사람을 등용시킬 때 엄격하게 선정하였고 공명정대하고 청렴결백하였기 때문에 사후에 광국공신과 연안군에 추봉되고, 청백리 안에 녹명되었다.
[모티프 분석]
우리나라 전설에서 관리의 청렴결백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우국충정에 관한 것이나 선비들의 지혜와 학문, 너그러운 인품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후백의 경우 관리등용과 관련하여 청렴한 인물로 왕조실록에 기록되었고, 사후에 청백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이후백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회에서 인재 등용과 관련하여 당파와 혈연의 청탁문제가 얼마나 심각하였는지 알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믿고 청탁을 하지 않았으면 등용되었을 사람이지만 성급하게 청탁하여 일을 그르친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 인재 등용의 과거 시험이 있었지만 선조에 이르러 당파의 정쟁이 심각하였고 관리들의 부패도 많았다. 이런 점에서 이후백의 인재등용 일화는 오늘날에도 청렴의 상징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