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171 |
---|---|
한자 | 儀禮服 |
영어공식명칭 | Ritual Clothe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양하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전해오는 관혼상제 때 입었던 옷차림.
[개설]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는 관혼상제(冠婚喪祭)나 돌 때 의례에 알맞은 옷차림이 있었으며 돌복, 관례복, 혼례복, 상복, 제복을 갖추어 입었다.
[내용]
1. 백일 옷, 돌복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부터 삼칠일, 백일, 돌까지 의례를 행하였는데, 백일 때까지는 백색 옷감에 하얀 줄을 넣어 만든 누비옷을 입혔다. 이 누비옷을 입으면 아이가 백 살까지 장수한다고 믿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되면 돌잔치를 하는데, 이때 남자아이는 연보라 풍차바지에 옥색 또는 분홍색 저고리를 입고 남색 돌띠를 맸다. 형편에 따라 오방색으로 지은 까치두루마기를 입고 그 위에 전복을 입기도 했는데, 머리에는 검은색 복건을 했다. 여자아이는 분홍색 풍차바지에 노란색 속치마를 입힌 후 다홍치마를 입혔다. 저고리는 색동 소매를 단 노랑이나 연두색 저고리에 당의를 입고, 머리에는 굴레를 쓰며 노리개를 달았다.
2. 관례복
아이가 자라 15세가 되면 남자아이는 관례를, 여자아이는 계례를 행하였다. 이때 땋았던 머리를 올리고 복건, 초립, 사모, 탕건을 씌워주는 의식을 치렀다. 여자는 머리에 쪽을 찌고, 그 위에 족두리를 얹은 후 용잠을 꽂았다. 개화기를 전후하여 단발령(1895년)이 시행되면서 관례와 계례는 거의 사라지고, 남자아이들에게 자를 지어 불러주는 풍습만 유지되었다.
3. 혼례복
혼례를 치를 때 혼례복을 입었는데, 이날은 양반 귀족과 평민을 구별하지 않고 가장 호사스러운 복장을 하였다. 신랑은 자색이나 남색 관복에 각띠를 띠고 흉배를 달았으며, 흉배에는 당상관이 하는 쌍학흉배를 달았다. 띠는 1품과 같은 서대를 매었으며 신발은 목화를 신었다. 신부는 활옷과 원삼을 입었다. 활옷은 다홍색 비단에 장수와 길복을 의미하는 연꽃, 목단, 십장생이 수놓였다. 이러한 활옷에 다홍색 치마와 노란색 삼회장저고리를 입었다. 원삼은 고려 시대 왕실의 공주와 옹주가 입었던 초록 원삼의 대례복을 서민에게 입도록 허용하였다. 소매에는 다홍과 노랑 양색의 색동이 달려 있으며, 그 위에 대대를 맸다. 머리에는 잠(簪)을 꽂고 뒷댕기를 드리웠으며 칠보화관을 썼다.
4. 상복
상을 당한 후 입는 옷으로, 죽은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입는 옷이 달랐다. 부모의 상을 당하면 ‘짓것’이라고 하여 씻지 않은 짓광목으로 된 옷을 입었는데, 그 위에 마포로 된 중단을 입고 행전을 돌라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복을 입었다. 허리에는 요질을 매고 머리에는 두건과 굴건을 쓰며, 그 위에 또 수질을 쓰고 상장을 짚고 짚신을 신었다. 여상주는 상복 차림을 하는데, 흰 족두리를 쓰며 흰 댕기를 드리우게 하였다. 상주가 외출을 할 때는 중단을 입고 요대를 매며 행전을 감아 돌라맨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그 위에 방갓을 쓰는데, 멀리 갈 때는 패랭이를 썼다.
5. 제복
명절이나 기제사 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입던 옷이다. 남성은 도포나 두루마기를 갖추어 입었는데, 머리에는 복건 대신 흑립이나 유건을 썼다. 당시 여성은 제사에 소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흰색 평상복이나 옥색 치마, 저고리를 갖추어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