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111
한자 盧漢城
영어공식명칭 Roh Hanseong
이칭/별칭 노장군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백승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노한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8~1945년 - 노한성, 일본 스모 선수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노한성, 일본 패망 후 한국으로 귀국
활동 시기/일시 1985년 - 노한성, 한국씨름협회부회장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88년 3월 25일연표보기 - 노한성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화촌마을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노한성 거주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1동
활동지 부산광역시
묘소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 지도보기
성격 체육인|씨름선수
성별
대표 경력 부산씨름협회장|대한씨름협회부회장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에서 출생한 씨름선수.

[가계]

1922년에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화촌마을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노한성[1922~1988]은 경상남도 함양군 씨름 1세대로, 함양을 대표하는 씨름 선수이다. 노한성은 어린시절부터 풍채가 좋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키 217㎝에 몸무게가 150㎏이나 되었다. 노한성은 사람들에게 주로 ‘노장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었다.

일제강점기인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를 배워 활동하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노한성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1동에 정착하였고, 부산경찰청 소속 무술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전국에서 개최되는 각종 씨름대회에 출전하여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였다. 1976년을 전후로 부산시씨름협회장과 대한씨름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씨름 발전과 후배 양성에 기여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9년부터 노한성을 기리기 위하여 부산광역시 동구에서는 노한성장사배동구씨름왕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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