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운동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354
한자 愛國啓蒙運動
영어공식명칭 Aeguk Gyemong Undo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2년 - 사립함명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6년 - 사립함덕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 - 사립열신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 - 사립의명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9년 - 동명의숙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0년 6월 27일 - 사립 함양보통학교 설립
사립함명학교 - 경상남도 함양군
사립함덕학교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12[개평리 287-1]지도보기
사립열신학교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구산대안로 12-2[평정리 481]지도보기
함양공립보통학교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고운로 43[운림리 27-1]지도보기

[정의]

1905년부터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일어난 국권 회복 운동.

[교육 운동]

일제에 의해 보통학교가 설립되기 전부터 함양 지역에서는 뜻있는 지역 유지들의 노력으로 사립 학원들이 세워져 근대 교육을 진행하였다. 1902년에는 함명학교, 1906년에는 지곡함덕학교, 1908년에는 백전 열신학교, 1910년에는 안의의 의명의숙과 수동동명의숙 등이 설립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된 사립 함명학교는 1902년 2월 당시 함양군수 방정규와 노두현 등 유지들이 학생들을 모아 신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외교통에 있던 홍학재와 함양 객사를 옮겨 가면서 학생을 수용하였다. 1908년 노두현 외 5명이 뜻을 모아 외교통 홍학재를 증축하여 보통교육과 고등 보통교육을 병설하여 교육을 진행하다가 1910년 6월 27일 사립함양보통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운영하였으나, 1911년 함양공립보통학교로 흡수되었다. 공립학교로 변하기 전 약 10년간 함양 지역 개화기의 지역 청년들에게 신식 교육을 베풀어 인재를 양성하였다. 1906년 11월 30일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설립된 사립함덕학교는 지곡의 정순현·노종한·송종문·정순영·정태현 등이 뜻을 모아 세웠다. 1907년 4월 1일 첫 입학식을 가지고 신식 교육을 실시하였으나, 1921년 9월 1일 일제가 흡수하여 지곡공립보통학교로 재개교하였다. 함덕학교는 공립으로 바뀌기 전까지 약 15년간 신교육을 이 지역에서 진행하면서 함양 청년들을 교육시켜 인재로 양성하였다. 1910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설립된 사립의명의숙은 양재기·임종석 등 함양 유지들이 안의 광풍루 등에서 고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신교육을 실시하였으며 특히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기울여 졸업생 중에 애국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1912년 4월 4일 일제가 강제로 인수하여 공립안의보통학교로 만들었다. 또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도 옛 사근역 건물에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신교육을 위한 사립동명의숙을 설립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에도 신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사립학교인 강덕강습소를 설치하였고,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도 1908년 지역 유지들이 사립열신학교를 세웠다. 하지만 각각 1924년과 1921년 보통학교로 흡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의 사립 교육기관들은 지역 유지들에 의해 설립되어 전통 한문 교육과 함께 신교육을 실시하여 함양 지역 청소년들에게 우리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등 개화기 청소년 교육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비록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보통학교에 흡수되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으나 일제강점기의 함양을 이끌어가는 청년을 배출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청년회를 중심으로 설립된 신간회 함양지회는 야학과 강연회·토론회 등을 주최하면서 지역계몽을 위해 힘쓴 모습이 확인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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