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320
한자 義呑所
영어공식명칭 Uitans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의탄소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지도보기
법령과 제도

[정의]

고려시대 경상남도 함양군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개설]

소(所)는 향·부곡과 더불어 고려시대의 특수 지방 행정구역이며, 왕실과 관아 등 국가에서 필요한 공물을 생산하였다. 소는 전국 275곳, 경상도에 49곳, 함양 지역에 3곳이 있었다. 소의 관리는 중앙정부의 관할이었다. 중앙의 영향하에 있던 주·군·현에서 소의 주민들의 공물과 세금 등을 징수하여 중앙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그런데 12세기 후반 무신정권 성립으로 중앙정부의 지방지배가 약화되면서 소 주민들의 저항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공주 명학소의 망이와 망소이의 난이 대표적인 소 주민들의 저항운동이다. 13세기 후반에는 원(元)의 과도한 공물 요구와 권문세족의 대토지 소유가 심화되면서, 소 주민들의 공물과 세금 부과가 가혹하게 이루어졌다. 이로 인하여 소의 주민들의 유망이 촉진되면서 소의 붕괴가 더욱 가속화되었다.

[관련 기록]

의탄소는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 고적조에 “의탄소, 군의 남쪽 30리에 있다. 소의 아전은 지금 군의 서쪽 웅곡리에 옮겨가 산다[義呑所 在郡南三十里 所之吏 今移居郡西熊谷里]”라는 설명과 함께 처음 등장한다. 이후 『여지도서』, 『함양군지』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내용]

의탄소는 고려시대 함양군에 속하였으며, 함양군 치소에서 남쪽 30리[약 12㎞] 떨어져 있었다. 의탄소의 현재 위치는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이다. 의탄소에서 생산된 공물은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지명의 의미와 변화상도 쉽게 찾기 어렵다. 다만 의탄소의 ‘탄(呑)’자가 숯을 의미하는 ‘탄(炭)’과 소리가 같은 점과 의탄리 일대에 나무가 풍부한 지역인 점을 고려하면, 숯을 생산하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김종직의 시인 「마천소」에서 숯을 굽는 골짜기를 언급한 점을 보면, 마천소와 가까이 있는 의탄소에서도 숯을 구웠을 가능성이 많다. 한편 의탄소의 아전이 의탄소의 지형과 유사한 함양읍 웅곡리로 이주한 점을 보면, 의탄소의 생활상과 생산활동이 웅곡리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변천]

의탄소의 설치와 폐지는 언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의탄소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 확인된다. 이 기록에서 의탄소의 아전이 함양읍 웅곡리로 이주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사실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의탄소에서의 공물생산 중단시기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의탄소 폐지 시기는 적어도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1530]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의탄소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특수행정구역 주민들의 이주와 생활상의 복원 자료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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