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334
한자 古地名
영어공식명칭 The late place nam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법령과 제도

[정의]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의 군현 명칭의 변화상.

[개설]

현재 함양군은 함양읍안의면 등 1읍 10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 함양 지역은 함양군과 안의군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함양군의 고지명은 함양읍 권역(이하 함양읍)과 안의면 권역(이하 안의면)을 나누어 설명할 수 있으며, 이는 읍격의 승격이나 강등과 서로 연계되어 있어 함께 설명할 수 있다.

고대의 함양군 함양읍은 신라 때는 속함군(速含郡), 757년(경덕왕 16)에 천령군(天嶺郡)이라 하였다. 함양군 안의면은 신라 때 마리현(馬利縣)이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이안현(利安縣)으로 고쳐 천령군 속현으로 포함시켰다.

고려시대에는 함양군 함양읍이 983년(성종 2)에 허주도단련사(許州都團鍊使)로 승격하였고, 1010년(현종 1)에 함양군, 1172년(명종 2)에 함양현으로 강등되었다. 함양군 안의면은 고려 현종 9년에는 합주(陜州)에 이속시켰고, 공양왕 때에는 감음(感陰)에 이속시켰다.

조선시대에는 함양군 함양읍은 1395년(태조 4)에 함양군, 1629년(인조 7)에 함양현, 1729년(영조 5)에 함양부(咸陽府)로 바뀌었다. 함양군 안의면은 태종 때 안음현(安陰縣), 1767년(영조 43)에 안의현(安義縣), 1896년에는 안의군(安義郡)으로 변화되었다.

[고대 지명]

초기국가시대의 삼한과 삼국시대의 가야의 함양군의 군명은 기록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함양군 함양읍은 가야가 병합된 이후 속함군으로 불렸고, 함양군 안의면은 마리현으로 불렸다. 함양읍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천령군은 본래 속함군인데……지금은 함양군이다[天嶺郡本速含郡……今咸陽郡]”에서 확인된다. 하지만 ‘속함(速含)’을 처음 사용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624년) 겨울 10월에 백제의 군사가 와서 우리의 속함성……등 여섯 성을 포위하였다[冬十月, 百濟兵來圍我速含……等六城]”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624년 이전부터 사용된 군명으로 파악된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인 685년(신문왕 5)에 신문왕은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였다. 이때 속함군을 9주 중 하나인 청주(菁州)의 관할에 포함하고, 본래의 지명은 그대로 두었다. 757년(경덕왕 16)에 행정개편을 통해 청주를 강주로, 속함군은 천령군, 마리현은 이안현(利安縣)으로 변경하여 천령군의 영현으로 예속시켰다. 천령군은 757년 이후에 고려가 통일할 때까지 속함군과 함께 병행하여 불린 것으로 파악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822년 3월) 18일…… 왕이 곧바로 최웅에게 급찬의 위와 속함군 태수직을……[十八日……王即授崔雄位級湌速含郡太守……]”이라 하였고, 『가야산 해인사 고적(伽倻山海印寺古蹟)』에서 “방로태감 천령군태수 알찬 최치원[防虜太監 天嶺郡守 遏粲 崔致遠]”으로 한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지명]

고려 태조는 후삼국의 통일 후에 왕권강화와 지방통제를 위해 대대적인 행정개편을 하였다. 당시의 행정개편은 개국공신들의 논공행상을 단행하면서 해당지역의 읍격(邑格)의 승격과 강등을 통해 다원·신분·계층의 군현개편을 단행하였다. 하지만 함양군의 읍격 승강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함양군의 읍격은 995년(성종 14) 이후부터 여러 차례 승격과 강등이 단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고려사』 지리지에서 “함양현……성종 14년에 승격시켜 허주도단련사가 되었다. 현종 3년에 함양군으로 강등하고, 내속시켰다[뒤에 함(含)을 함(咸)으로 고쳤다]. 명종 2년에 현으로 강등하고, 감무를 두었다[含陽縣……成宗十四年陞爲許州都團練使 顯宗三年降爲含陽郡來屬後 含改爲咸. 明宗二年降爲縣置監務]”라고 기록되어 있다. 995년(성종 14)에 천령군에서 허주로 읍격이 승격된 배경은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당시 허주에 도단련사가 파견된 배경에서 추정할 수 있다. 도단련사는 당시 허주 등 전국 7주(州)에 파견되었고, 군사적 성격을 가진 지방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으로 보아 함양 지역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허주로 승격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1012년(현종 3)에 함양군으로 강등하고, 합주(陜州)[현 합천]에 내속되었다. 하지만 현종의 어머니인 효숙왕후(孝肅王后)의 고향인 관계로 대량주군을 합주로 바꾸고, 함양 등 12개현을 내속시켰다. 함양군으로의 강등 배경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중앙의 지방통제 역량부족 때문에 야기된 행정개편 시행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에 들어서 함양군 함양읍안의면은 또 읍격이 강등되거나 타 지역으로 예속되었다. 함양읍은 1172년(명종 2)에 함양군을 함양현으로 강등하고 감무를 두었고, 안의면은 1390년(공양왕 2)에 이안현을 감음현에 예속시켰다. 이 같은 읍격의 강등과 예속은 중앙의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중앙에 대한 지방민의 불만 표출에 대한 행정개편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지명]

조선시대에 들어서 행정개편은 유교 이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합리적으로 개편되었는데, 태종 대부터 지속적으로 정비되었다. 조선의 군현개편은 일원적이고 합리적인 행정구조로 단행하였고, 수령 중심의 지방행정구조를 구축하였다. 한편 수령 중심의 지방행정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하여 각 지역에 유향소 등 사족집단의 자치조직 설치를 허용하고, 읍리(邑吏) 등 향리들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행정개편은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와 질서유지, 수취체제의 정비를 원활하게 하여 중앙집권체제의 확립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고려시대의 군현 개편 성격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함양군 함양읍은 1395년(태조 4)에 함양현을 함양군으로 승격시키고, 지함양군사를 파견하였다. 조선의 건국 직후에 함양현을 함양군으로 승격시킨 배경은 1380년(고려 우왕 6)에 이성계가 진포를 통해 남원·함양 등 지리산 부근을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면서 함양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을 주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1629년(인조 7)에 함양군을 함양현으로 강등하였다. 이에 대해서 『인조실록』 인조 9년 3월 19일 기사에 “함양은……이미 군에서 현으로 강등되었으니, 지금 혁파할 필요가 없습니다[咸陽……旣以郡降爲縣 今不必革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함양현으로 강등된 이유는 함양 사람인 양경홍의 역모사건 때문이다. 양경홍 역모사건과 관련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인조 7년 12월 10일에서는 “처형된 죄인 양경홍은 집이 함양이고……읍호를 강등하며[正刑罪人梁景鴻所居咸陽……降其邑號]”라고 기록되어 있다.

양경홍의 역모사건이 일어난 지 100년 뒤에 1728년(영조 5년)에 함양현이 함양부로 승격되고, 안음현을 혁파하여 함양부에 예속시키는 행정개편이 있었다. 『경상도읍지』 함양군읍지의 “영조 기유년에 부로 올렸다[英廟朝己酉昇爲府].”라고 기록되고, 『영조실록』 영조 4년 7월 7일의 “안음현을 혁파하여 함양부에 붙였다. 역적의 괴수 정희량이 안음에서 났기 때문이다[革安陰縣屬之咸陽府 以逆魁希亮出於安陰也]”라고 기록된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 숙종 7년 1월 13일에는 “함양부사 윤원을 새로 제수하고[新除授咸陽府使尹源]”라는 점에서 1681년(숙종 7) 이전에 함양부로 승격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 함양군수를 파견한 사실이 지속적으로 보인 것에서 사료의 오기 가능성이 농후하다.

1788년(정조 12)에는 함양군으로 강등되었는데, 『경상도읍지』 함양군읍지에 “정조 무신년에 군으로 내렸다[正廟朝戊申降爲郡]”라고 기록된 것에서 알 수 있다. 다만 강등 배경에 대한 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1895년에 23부제 실시에 따라 진주부 함양군이 되었다.

함양군 안의면은 1415년(태종 15)에 이안현을 예속한 감음현을 안음현으로 바꾸고 치소를 이안으로 옮겼다. 그 후 1729년(영조 5)에 정희량의 반란사건으로 안음현을 분리시켜 거창과 함양에 각각 예속시켰다. 하지만 1736년(영조 12)에 정희량의 반란사건 때 창의한 안음현 선비 이성택(李聖擇)의 상소로 다시 설치되었다. 1767년(영조 43)에 산음현(山陰縣)에서 7살 난 아이가 아기를 낳은 이유로 산청현(山淸縣)으로 고쳤을 때, 안음현도 ‘음(陰)’자를 고쳐 안의현(安義縣)으로 바꾸게 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경상남도 안의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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