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316
한자 咸陽方字鍮器-脈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은제

[정의]

199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함양군 안의 지역 방짜징.

[개설]

함양군 안의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방짜유기 제작 공장이 있었다. 이 가운데 방짜징의 전통적 제작방식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함양군 안의면의 이용구가 계승하고 있는 전통 방짜징 제작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14호로 지정되어 함양군 안의 지역 방짜징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유기의 제작 전통]

청동기 시대 이래 한국에서 동기(銅器)는 널리 상용되던 기물이었다. 중국에서는 ‘신라동(新羅銅)’이라 하며 신라에서 산출된 동을 높이 평가하였다. 명나라 사람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鋼目)』에는 “신라동은 종을 만드는 데 좋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라동은 ‘고려동’으로 이어져 중국에서도 이름 높았으며, 고려시대에는 청동합과 청동발 등이 분묘에 부장된 이래 동기의 사용은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동기의 사용은 더욱 확산되었으며, 유기의 제작이 일반화되었다. 조선시대의 동기를 만드는 장인은 제작방식에 따라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만든 기물을 두드려 만드는 유장(鍮匠)과 거푸집에 구리물을 부어 만드는 주장(鑄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채택되었다. 경기도 안성 지방에는 주물제작법(鑄物製作法)이, 평안북도 정주 납청(納淸) 지방에서는 방짜제작법(方字製作法)이, 전라남도 순천 지방에서는 반방짜제작법(半方字製作法)이 각각 채택되어 유기를 제작하였다.

조선 후기 장시의 발전과 함께 민간수공업도 비약적으로 증대하였고, 수공업의 발전과 함께 놋그릇을 제작하는 마을인 유기점도 성장하였다. 특히 19세기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기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소형의 기물은 주물로 제작하여 주장들이 담당하였고 주물로 만들기 어려운 기물의 경우 방짜 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통상 놋쇠를 두드려 기물을 만드는 장인을 ‘유장’ 혹은 ‘방짜유기장’이라 부른다.

[함양 방짜징 제작]

함양군에는 1970년대 초반까지 서상면, 서하면 등지에 16개소 정도의 유기공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들 공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물을 제작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안의면의 경우 방짜징이 유명하였다. 징은 전통 악기 중 하나로 각종 농악과 무악에 사용되었으며, 사찰에서도 이용되었다. 사찰에서 사용된 징은 ‘금고(金鼓)’ 혹은 ‘반자(飯子)’라고 하였다. 현전하는 고려 시대 ‘금고’는 대부분 주물로 만들어져 있어, 놋쇠를 두드려 만든 방짜징과는 제작 기법상 차이가 있다. 주물로 제작된 징은 구리와 주석을 주원료로 하되, 납이 소량 섞여 있다. 예를 들어 통일신라 시기인 8~9세기 제작된 인각사지 금고의 경우 구리 76.6%, 주석 13.9%, 납 1.8%를 합금하였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의 수다사 터에서 출토된 12세기 후반 금고의 경우 구리 71.6%, 주석 18.23%, 납 7.2%를 합금하였다. 한편 방짜징의 경우 납이 섞이면 제작되지 않아 구리 78%, 주석 22%를 합금하여 제작하였다.

납청유기의 사례를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질 좋은 유기의 생산을 위해서는 양질의 구리를 공급받아야 하고, 더불어 구리를 녹일 수 있는 소나무 숯의 공급이 필요하다. 함양 안의 지역은 지리산덕유산 사이에 있어 소나무 숯의 공급이 원활하였으며, 깊은 산에서 제공되는 맑은 공기 역시 유기 제작에 좋은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유기는 탁한 공기에 쉽게 변색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또 깊은 산에서 흘러나온 계곡물은 담금질에 필요한 깨끗한 물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안의면은 함양과 거창에 인접해 있어 유기의 판매에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18세기까지 민간에서는 여름철에는 자기를 사용하고, 겨울철에는 유기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19세기 이래로 유기는 일상용기로 널리 사용되어 가난한 집에서도 유기 몇 점은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함양군 안의면에서 징이 언제부터 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시원이라는 사람이 처음 징 만드는 기술을 배워왔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함양 일대의 징점 주인들은 매년 10월 초 사흗날 시원을 위해 제를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의면의 대표적 징 제작자는 이용구이다. 이용구는 16세부터 함양의 대표적 징장 오덕수에게 징 제작법을 전수받기 시작하였다. 17년간 징 제작법을 전수받은 이용구는 1968년부터 안의면에서 직접 징점을 운영하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정부에서 징 제작을 금지하면서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서울에서 유기를 제작하던 이용구는 1984년 다시 안의로 돌아와 징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이용구의 아들들이 그 전통을 어어 가고 있다.

[함양 방짜징 제작방법]

안의의 징은 방짜기술로 제작되었으며, 방짜징의 제작은 음력 11월부터 이듬해 2월 즉 농한기에 이루어졌다. 제작에는 대정, 가질대장, 앞마치꾼, 전마치꾼, 쇠마치꾼, 풀무꾼이 한 조가 된다. 대정은 징 제작의 최고 기술자로, 전체 공정을 감독하며 징의 소리를 결정하는 울음 잡기 작업을 담당한다. 가질대장은 징에 나무 나이테 모양의 문양을 새기고 광을 내며, 손잡이 구멍을 뚫어 손잡이인 끈을 매는 장인이다. 앞마치꾼, 전마치꾼, 쇠마치꾼은 망치질을 하는 3명의 장인을 말하는데, 이들은 대정의 지시에 따라 망치질하여 바둑 모양의 쇳덩이를 징 형태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풀무꾼은 화덕의 불 온도를 높이기 위해 풀무질을 하는 장인이다.

징을 만들기 전에 그 재료인 놋쇠를 녹이는데, 놋쇠는 구리 78%와 주석 22%를 합금한다. 이를 위해 도가니를 화덕에 넣고 풀무질하여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다. 일정 시간 풀무질을 하면 도가니의 쇳물이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하면 적당한 온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징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의 6단계를 거쳐야 한다.

1단계 바둑은 물판에 쇳물을 부어 바둑알같이 생긴 쇳덩이를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물판에 부어 만들어진 쇳덩이가 마치 바둑알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단계 멍어리 바둑은 물판에서 굳어진 바둑을 불에 달구어 쇠판 위에 올려놓고 망치질하여 징의 형태를 잡는 작업을 말한다. 앞마치꾼, 전마치꾼, 쇠마치꾼이 번갈아 매질한다. 이때 바둑은 원형 혹은 타원형을 띠면서 테두리가 갈라지게 된다. 갈라진 테두리를 원형으로 잘라낸 후 다시 망치질하여 그와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이때 바둑이 식으면 다시 달구어 매질한다.

3단계 우김저복은 멍어리 바둑이 끝난 납작한 바둑을 여러 장 겹칠 수 있도록 매로 쳐 넓히는 작업을 말한다. 첫 번째 바둑을 적당한 크기로 넓힌 뒤, 두 번째 바둑을 그 위에 올려놓고 첫 번째 바둑 크기로 넓힌다. 이렇게 10장의 바둑을 넓히는데, 이것을 1짝이라 부른다. 1짝씩 바둑을 망치질하는 이유는 열의 지속성을 높여 바둑의 유연함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4단계 무개리는 우김저목 작업으로 여러 겹으로 포개진 바둑을 하나씩 분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작업 도중 바둑이 식지 않게 수시로 불로 달구어 주고 넓게 펴서 분리된 바둑을 무개리라고 한다.

5단계 담금질 무개리는 달구어진 무개리를 냉각수에 넣어 담금질하는 작업을 뜻한다. 담금질을 하면 놋쇠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징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다만 담금질 과정에서 징의 형태가 뒤틀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바로잡는 벼름질을 해야 한다.

6단계 울음 잡기는 징의 기본형태가 완성된 후 대정이 곰망치로 징의 표면을 두들기며 징 소리를 정해주는 작업으로, 징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징의 소리는 주파수 차이가 근소한 두 개의 파동이 서로 간섭하면서 진폭이 주기적으로 변하다가 어느 접점에서 합성파를 이루는 맥놀이라는 현상에 의해 오랫동안 울리게 된다. 방짜징은 수공으로 제작되다 보니 두께가 일정하지 않고 표면도 고르지 않아 징의 각 부분에서 다른 파동이 나온다. 그 때문에 징 제작의 최고 책임자인 대정이 징의 소리를 고르게 하는 작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 따라서 울음 잡기 작업은 징이 악기로서 탄생하는 마지막 작업이자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울음 잡기는 대정에 의해 1차로 ‘풋울음’잡기가 이루어지면, 가질대장이 나이테 모양의 문양을 새기고 손잡이 끈을 매달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한다. 가질대장의 작업과정에서 소리가 변하므로 대정은 다시 2번째 울음잡기를 실시하는데 이를 ‘재울음’이라 한다.

위의 6단계의 공정을 거쳐 완성된 함양의 방짜징은 전체 공정이 수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징을 제작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현재 공방에서는 기계를 사용하여 징과 각종 유기를 제작 생산하고 있다. 수공정은 방짜징 제작 시연 시에만 한다.

[함양 방짜징의 의의]

함양 안의 지역에서 제작되어 오던 방짜징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유기제작방식 가운데 하나이며, 특히 그 소리가 웅장하고 길어 장인의 재능이 각별하게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안의 방짜징은 함양의 안의 지역 일대에서 이어져 온 전통적 방짜징 제작을 계승할 뿐 아니라, 곱고 웅장한 안의 징을 제작하여 함양의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함양군의 옛 안의현에 속하는 안의면·서상면·서하면 지역은 악기 공방인 징점이 밀집해 있었으며, 대표적 전라도 징의 생산지로 알려져 왔었다. 1960년대까지 안의 징의 생산은 서상면 꽃부리 마을서하면 송계마을의 징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재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징장으로 등재된 이용구는 꽃부리 마을에서 전통 징의 제작방식을 전수받았다. 이용구의 징은 소리가 크고 웅장하며 오랫동안 이어져 파장이 긴 것으로 이름나 있다. 이용구가 이어온 전통 방짜징의 제작방식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199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함양군 안의의 방짜징의 본래 전승지는 함양군 서하면 송계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송계 지역에서 방짜징을 제작하는 장인은 연로하여, 오늘날 징을 제작하는 장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송계의 방짜징 제작은 안의 장짜징 제작자인 이용구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특히 이용구의 제작방식은 전통 수공업 방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어 민속학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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