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치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248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기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2년 - 「매치마을」, 『함양군사』 3권에 수록
관련 지명 매치마을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 지도보기
성격 지명 유래담
모티프 유형 마을 이름 유래담|마을 사람들의 재치와 기지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의 매치마을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2012년에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 3권 381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 매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는 매화낙지(梅花落地)의 명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영남과 호남의 경계에 있는 지역으로 한 가정의 안채는 함양에 속해 있고 사랑채는 전라도 아영에 속해 있었다. 역촌 마을에 있는 이곳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문 역할을 하였다.

지나는 사람이 많으니 밀주를 빚어 팔거나 도박판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라에서 단속이 나오면 이를 피하는 방법도 재미있었다. 경상도에서 밀주나 노름의 단속이 나오면 사랑채에 피하였고, 전라도에서 단속이 나오면 안채로 피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위치가 산고개 능선 위에 있어 곡식 농사를 짓기 힘들어 고랭지 채소 정도밖에 경작할 수 없었지만 생활은 그다지 궁핍하지 않았고 사회의 저명인사가 많이 배출된 마을이라 전해진다.

[모티프 분석]

「매치마을」의 주요 모티프는 마을 이름이 지어지게 된 ‘지명 유래담’이다. 또한 마을의 위치로 인해 과거에 발생하였던 일들을 풀어놓고 있는 이야기이다. 영남과 호남의 경계에서 두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마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공간이었으므로 밀주와 노름판이 허다하였고, 이에 따라 양 지역에서 단속을 실시하였지만 이것을 피하는 마을 사람들의 재치와 기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마을의 위치가 농사를 짓기에 유리하지 않음에도 지형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였다고 하는 등 마을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마을에 대한 긍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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