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강유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666
한자 學岡遺稿
영어공식명칭 Haggangyugo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공광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학강유고』 간행
소장처 영남대학교 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성격 전적
저자 정재경
편자 정용현
간행자 정용현
권책 4권 2책
행자 10행 22자
규격 30.0×20.2㎝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
권수제 학강유고
판심제 학강유고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의 유학자 정재경의 문집.

[저자]

정재경(鄭在璟)[1881~1959]의 자는 내훈(乃薰), 호는 학강(學岡), 본관은 하동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효리마을에서 태어났다. 고조할아버지 정진망(鄭鎭望)은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의 문인이다. 아버지 정환식(鄭煥植)은 호가 일송(一松)이며, 어머니는 죽산박씨 박필희(朴必喜)의 딸이다. 1914년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1939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가성마을에 문산재(文山齋)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재실 뒤편에 사당을 세우고 주자의 진영을 봉안하여 4월과 9월에 제생(諸生)들과 제사를 지냈다. 평생토록 『주자대전』과 『주자어류』를 읽으며 “의리가 이 책 속에 모두 있는데 어찌 다른 책에서 정력을 낭비하겠냐.”고 하였다. 침실의 병풍에 직접 ‘중정경의(中正敬義)’[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곧고 올바르며, 사람을 중시하고, 의로운 뜻을 품었으면 반드시 실천한다.]란 네 글자를 적어 두고 밤낮으로 보면서 반성하였다. 묘소는 문산재 뒤편 언덕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아들 정용현(鄭庸鉉)이 유문(遺文)[살아 있을 때 써 놓은 글]을 모아 1973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학강유고(學岡遺稿)』는 4권 2책의 석인본(石印本)[석판 인쇄로 출간된 책]으로, 전체 크기는 30.0×20.2㎝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郭)은 21.7×14.3㎝이며, 행마다 경계가 있다. 10행 22자이고,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내향이엽화문어미이다. 현재 영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서문은 1973년 추연(秋淵) 권용현(權龍鉉)[1899~1988]이 지었으며, 발문은 1973년 문인 진영달(陳永達)과 아들 정용현이 썼다. 권1에는 부(賦)·시(詩)·애사(哀辭), 권2에는 서(書)·잡저상(雜著上), 권3에는 잡저하(雜著下)·서(序)·기(記)·제발(題跋)·명(銘)·잠(箴)·찬(贊)·사(辭)·혼서(婚書), 권4에는 상량문(上樑文)·고축문(告祝文)·제문(祭文)·묘지명(墓碣銘)·행장(行狀)·부록(附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총 131수의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심성 수양 관련 시문이 많다. 자신이 거처한 곳의 경관과 주변의 명승을 노래한 것도 많다.

[의의와 평가]

『학강유고』는 전통 교육을 받은 마지막 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정재경의 문집이다. 정재경이 살던 문산재에서 현재까지 유계(儒契)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향촌에서 후진 양성에 힘쓴 정재경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문집에서 그의 교유 관계를 확인할 수 있으며, 당시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의 사회 활동도 살펴볼 수 있다. 정재경의 시문에 보이는 「문산구곡(文山九曲)」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재경이 문산재에 거처하며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정재경의 구곡 설정이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하여 정재경의 의식을 한층 더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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