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323
한자 驛院
영어공식명칭 Station Guesthouse
이칭/별칭 역관,역참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고려시대 - 사근역 설치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시대 - 사근역·제한역·임수역과 사근원·광혜원·도현원·덕신원 수원·반락원 설치
사근역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내동마을 지도보기
제한역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 조동마을 지도보기
임수역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교북리 관북마을 지도보기
사근원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지도보기
개념용어(일반)

[정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세워진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개설]

경상남도 함양 지역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고, 지정학적 요충지로 일찍부터 역원이 설치되었다. 함양지역의 역과 원은 고려·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 역원은 『고려사』에서 사근역만 전해지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사근역·제한역·임수역 등 3개 역과 사근원·광혜원·도현원·덕신원·수원·반락원 등 5개의 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역(驛)과 원(院)]

역은 우역(郵驛), 역관(驛館)이라고 하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고려 성종대에는 22도 525역을 두어 조직망을 더욱 체계화하였고, 원간섭기에는 몽골식 역참제도를 도입·개편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명(明)의 파발제를 도입하고, 봉수제와 연계하여 보완하였다.

원은 고려·조선시대의 관원들이 지방파견의 편리성을 도모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관영 숙박시설이다. 고려시대의 원은 대체로 사원(寺院)에 부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시대에는 주로 읍치(邑治)를 중심하여 사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대개 주요 교통로를 따라 고개 마루·하천변·해변의 포구 등지에 분포하였다.

[고려 시대]

고려 시대 함양 지역의 역원은 사근역뿐이다. 사근역과 주변지역을 연결한 역도는 산남도(山南道)이다. 산남도의 명칭은 성종 대에 10도제를 시행할 때 사용된 명칭인 산남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남도는 경상남도 진주를 기준으로 네 방면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28개역을 관할하고 있다. 사근역산남도의 28역 중 하나이며, 진주~육십령~전주 간 역로와 진주~팔량치~남원 간 역로상에 있다. 원은 알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지리지에 의하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첨이 함양 지역을 떠나면서 남긴 시에서 함양의 여관을 언급한 점을 보아 고려시대에도 원이 존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 들어서 함양지역은 서부 경상남도 지역의 교통요충지로 발전하였다. 고려 후기 함양지역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지되었고, 조선이 들어서자 함양의 읍격을 올리고 서부 경상남도 지역의 교통요충지로 발전한 것이었다. 조선 시대의 각종 지리지에 의하면, 경상남도 함양지역의 역원은 사근역·제한역·임수역 등 3개의 역과 사근원·광혜원·도현원·덕신원·수원·반락원 등 5개의 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8개의 역원 가운데 사근역은 고려시대의 산남도 속역이었다가 서부 경상남도 지역의 역도인 ‘사근도’의 중심 역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역원의 위치는 사근역이 현재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내동마을, 제한역함양군 함양읍 구룡리 조동마을, 임수역함양군 안의면 교북리 관북마을로 각각 비정되고 있다. 원은 사근원함양군 수동면 화산리로 비정될 뿐, 그 외의 원은 제대로 비정되어 있지 않다.

[사근도와 『사근도형지안(沙斤道形止案)』]

조선시대의 사근도는 고려시대의 산남도가 개편되어 형성된 것인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관장한 관도(官道)로서 사근역 중심으로 15개역을 관장하였다. 이 역도는 북쪽으로 안의·거창, 서쪽은 남원, 남쪽은 산청·진주 등지로 이어진 관도이며,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사근역·제한역·임수역은 사근도의 관할 역이었다.

최근 들어 『사근도형지안(沙斤道形止案)』이라는 중요한 자료가 발굴되었다.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에 사근도 소속역의 인적 현황이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 형지안에는 상당히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18세기 중엽 사근도 속역의 인적 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며, 역리·역노비·솔거인·보인 등 5,000여 명의 역인들의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사근도형지안(沙斤道形止案)』 자료를 통해 경상남도 함양군 관할 역의 역인을 살펴보면, 사근역은 역인 237인·솔정 987인·인정 1,222인·보인은 86인으로 사근도 관할 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역이었다. 제한역은 역인 29인·솔정 163인·인정 192인·보인 7인이고, 임수역은 역인 38인·솔정 133인·인정 159인·보인 15인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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